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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생애
이상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20년 9월 23일 서울 사직동 어느 허술한 이발소 안집에서 김해경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출생지는 사직동이지만 호적상으로는 경성통동 154번지로 되어 있다. 1912년 그의 나이 세 살 때 이상은 백부인 김연필의 집으로 옮겨가 거기서 학교 공부를 하면서 성장하다가 24세 때 백부가 돌아가자 친부모 슬하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상이 어린 나이 때부터 실부인 연창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조부와 백부의 수하에서 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연창이 상을 얻었을 때 연필에게서 소생이 없었던 점을 들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조부 병복이 장남인 연필에게서 손자를 기대하다가 성취하지 못하고 그 기대를 차남인 연창의 소생에게서 성취하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실부인 연창이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연창은 형의 알선으로 관내부 활판소에서 직공으로 일하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잘렸으며 활판소를 그만둔 뒤 이발소를 차렸다가 그것도 실패한 인물이었다. 그것이 그의 책임이든 아닌들 간에 부친이나 형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였고 또 실지로 평생을 통해서 자식인 상을 위해서나 나머지 가족들을 위해서 뚜렷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셋째는 무엇보다도 이상이 그 용모와 재능에서 조부와 백부의 매음을 흡족하게 해 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만약 이상이 용모가 추했거나 장차 어떤 말썽을 일으킬 소지가 보였다면 조부의 편애도 빨리 식었을 터이고 백부도 과히 넉넉하지 못했던 내용으로 이상의 교육에 열성을 쏟지도 않았을 것이다.
- <새 자료로 본 이상의 생애> 352면이처럼 빈곤 때문에 유아시절부터 백부 밑에서 자라게 되었지만 우리는 여기서 아들을 낳지 못한 백모에게서 받은 눈총이 매우 거세었을 것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때 이상이 받은 정신적 외상은 그의 문학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인 작용을 가했던 것이다.
이상은 세 살 때부터 백부 댁에서 성장하여 성격 형성의 가장 중요한 때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시기를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났다. 그리하여 이상은 동일화의 대상이 없어져서 아버지에 대한 동일화의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백모의 학대는 더욱더 불안과 내적 갈등을 가지게 하여 이상으로 하여금 자폐적인 세계에 머무르게 하는 정신 분열증 적인 성격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나아가서 성도착증적인 요소까지 지니게 했던 것이다.
- <문학이론의 현장> 122면드디어 1917년 신명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수학 시대는 시작되었다. 1921년 3월에 신명학교를 졸업하고 도광학교에 입학했으나 1924년 이 학교가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병합되자 전입학하여 1926년 졸업을 하게 되고, 같은 해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하여 1929년 1위로 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취직하게 되었다.
특히 경성고등 시절에는 화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간직해 오다가 문학쪽으로 관심을 두기시작했다. 이 시기는 그가 예술에 대한 소신을 굳게 가다듬은 시기로 볼 수 있다. 가령 "예술가란 자기 자신의 새 세계를 개척해 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예술가요 예술가의 의무요 인류에 공헌하는 길이다"란 말을 곧잘 했다는 증언에서도 그렇다.
1931년 이상은 <<조선건축>>지에 일문으로 된 최초의 시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등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에서부터 그에게는 전통적 문학 계승이니 혹은 정서적 바탕 위에서 언어를 갈고닦는 서적을 배제했고 숫자와 기하학적 낱말, 그리고 관념적 한자언어로 구성된 애매모호한 문학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듬해 발표한 소설 <지도의 암실>도 마찬가지다. 그의 소설 가운데 단 두 편 <지도의 암실>과 <지주회시>가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씌어졌으며, 군데군데 규범 문장을 파괴하는 등 언어유희가 대종을 이루고 있어 전통적 소설로서의 골격을 거의 이탈한 작품을 내놓았다.
1933년 그의 나이 23세 되던 해 폐결핵으로 총독부의 기수직을 사임하고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을 갔다가 여기서 기생 금홍과 알게 되고 곧 서울로 돌아와 종로에서 다방 '제비'를 개업하였다. 이듬해인 34년 순문학의 친목단체인 '구인회'에 가입하였으며, 특히 소설가 박태원과 가까이 사귀었다. 그리고 이때 저 유명한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다가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말미암아 중단되었다.
1936년은 그의 창작력이 가장 왕성하게 나타났던 때이다. <<중앙>>지에 발표한 시 <지폐>를 비롯하여 '조선일보'에 <내부> <육친> <자화상> 등과 소설 <지주회시> <날개> <동해> <봉별기>와 수필 <서망율도> <조춘점묘> <여상> <약수> <행복> <추등잡필> <가을의 탐승기> 들을 발표하여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폐결핵과 무질서와 곤궁한 생활에서 변동림과 정식으로 결혼하고 곧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일경에 검거된 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출감되었지만, 곧 동경제대 부속병원에 입원 중 별세하였다.
이상과 같이 만 26년간의 파한 많은 생애를 개관해 볼 때, 그의 몇 가지 특이한 면을 간직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가령 유년기의 성장 과정부터가 그렇고 수재의 ㅁ녀모를 띠고 미술과 문학에 뜻을 두었다는 사실과 여성 편력이 무절제했으며 도시의 궁핍한 생활 속에서 극심한 폐결핵을 앓았다는 점 등은 당면한 현실에서 이상의 고독한 생애가 그의 문학에 독자성을 획득하는 데 직접 간접으로 연관성이 깊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1930년대 모더니즘과 이상
1930년대의 이상은 19세기적 근대문학의 열기가 더해 갈 때 이에 제동을 걸고 현대적 면모로 일신시키려 했다. 가령 1920년대 문학이 전폭적으로 감성지향의 자기만족적인 심미주의에 매달리고 있을 때 그는 풍자, 위트, 야유, 과장, 패러독스, 자조 등의 다양한 지성을 동원하여 순수한 형이상학의 정열을 과시했던 것이다. 왜 이 무렵 이상이란 한 고독한 문인에게서 이러한 고행이 시작되었는가. 이것은 결코 우연의 현상으로만 볼 수 없다. 1920년대의 불가피한 현실상황과 유형무형으로 결탁되어 1920년대식 문학이 산출되었듯이 적어도 1930년대의 현실상황과 어떤 형태로든 결탁되어 이러한 문학이 산출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상문학은 무엇보다 불안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무렵 식민지 한국이 겪어야 했던 시련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매우 가혹했다는 기록은 도처에서 볼 수 있다. 1920년대 문학이 프로문학이나 민족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주축으로 했다면,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파시즘의 위협과 같은 정치적 압력이 대두되어 세계대전을 앞두고 나날이 짙어만 가는 전운 속에 어둡고 절박한 상황은 최소한의 이데올로기조차 허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문학으로서 자신의 감정과 심리를 드러내려 했을 때, 그것은 암담과 우울의 문학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1930년대 작단은 주조의 공백, 각개의 분산 활동, 순수 작단의 전성, 대중 작단의 형성, 무능한 작가의 도태와 세대교체 등 5대 변모 양상을 보여주어 문학의 체계를 새롭게 전화시켰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상의 문학은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에 나타난 부정성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 세계는 모더니스트로 분류되는 여타의 작가들과도 독특한 차별성을 가진다. 그것은 우선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글쓰기 양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컨대 그의 작품은 시와 소설, 혹은 수필 등 장르인식이 모호하다거나, 띄어쓰기가 무시된다든지 하는 등의 재래의 문학적 양식과는 아주 다른 낯선 방법들이 적용되고 있다. 이런 '양식에 대한 반동'은 몇몇 작가들에 의해 부분적인 실험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상의 경우만큼 과감한 파괴를 감행한 적은 없다. 그러한 이탈과 파격은 단순히 양식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의 문학 전반에 걸쳐 보여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일체 거부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실험의식의 근원은 무엇인가.
1930년대 후반기라는 시대적 특수성은 작가들에게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형상화보다는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형상화를 통해 다루게 했다. 이 시기를 논하는데 있어서 꼭 인용되고 있는 임화가 주장한 '그리려는 것과 말하려는 것의 불통일성'은 제한된 한 시대현상을 그대로 반영해 준다. 작가들은 일제의 강압을 두려워한 반면 또한 분노했다. 이 이중의 갈등 속에서 작가들은 소리 죽여 숨 쉬어야 했으며, 자신을 은폐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1930년대 후반기의 문학은 '은폐의 미학', '위장의 미학'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상 문학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양식에 대한 반동을 괴팍한 모더니스트의 치기나 장난으로 볼 수는 없다. 그의 문학은 너무나도 정교하고 일관적이어서 과학적인 원칙이 발견된다. 계획된 '위장'이 이상의 기본적인 미의식인 것이다.
루카치는 모더니스트 작가들에게 인간이란 '피루체(던져진 존재)에 불과하여 역사에 대해 부정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그 자신이 겪은 경험의 한계에 갇혀 있고 개인적인 역사가 없어 세계 속으로 던져진다'라고 했다. 하지만 덧붙이기를 이 문학에서의 유일한 발전은 '인간조건의 점차적인 폭로'라고 강조했다. 우리의 모더니즘 문학이 서구의 미적 특질을 그대로 이어받는다고 할 수는 없다. 이상의 피루체는 모더니즘 일반에서 보이는 보편적인 인간조건이 아니라 특수한 사회적 운명인 것이다. 특수한 역사적인 현실을 경험함으로써 이상은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던져버리고 싶은 존재로서의 자기 존재 인식이 생성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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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미 / <새 자료로 본 이상의 생애> / <<문학사상>> / 1974.4월호 / 352면
장윤익 / <문학이론의 현장> / 문학예술사 / 1980 / 122면
문종혁 / <몇가지 이의, 문학사상> / 1974.4월호 / 348면
김용성 / <한국 현대문학사 탐방> / 국민서관 / 1973 / 272면
김우종 / <30년대 작단의 문학사적 변모> / <<국어국문학>> / 37.38호 / 1967 / 72면
루카치 / <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 /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 / 인간사 / 1988 /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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