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5. 24.

    by. 건물주님이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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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적 글쓰기

      일상 언어는 생활세계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전적 형식이나 체험의 양식을 서술하는 데 보다 유용한 언어이다. 작가 이상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재현의 대상으로 삼아 글쓰기를 실천한다. 이상에게 있어 일상 언어의 기호적 실천은 자전적 글쓰기의 형태로 전개된다. 즉 자신의 실제 삶을 일상적 담론으로 형상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주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환유적 글쓰기에 속하게 된다.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 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된다.
    - <권태> 이상

     

      위에서 말하는 '기사'는 글쓰기의 방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사란 사건 또는 사실에 대한 기록, 또는 기술이다. 말하자면 언어로 일상적 사실을 기술하는 형식인 것이다. 일상적 사실의 기술은 재현론적 관점에서 보면 리얼리티의 재현이 된다. 일상적 사실을 재현한 소설은 리얼리즘에 가깝지만, 그것이 근대의 개인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질 때 모더니즘에 연결된다. 이상은 자신의 주변에 관한 체험들을 자아 원점을 기반으로 하여 문학으로 형상화했다. 주로 이러한 것들은 수필이나 편지, 자전적 소설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상의 <환시기> <봉별기> <종생기> 등의 소설은 바로 이러한 기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위의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연구'인데 이 연구는 객관적 묘사 정신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객관적 묘사는 연구 또는 실험에 의해 달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1930년대 자전적 형태의 소설은 이러한 연구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또 생각하여 보면 그들은 내가 채 알지 못하는 바 세계적 지리학자거나 고현학자인지도 모른다
    - <추등잡필> 이상

     

      벤야민은 근대성의 특징으로 거리의 산책자를 들고 있다. 이러한 고현학자, 또는 거리의 산책자로서의 글쓰기는 1930년대 모더니즘의 한 특성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은 수필 형식의 글에서 고현학자, 또는 거리의 산책자로서 글쓰기를 수행하고 있음을 비치고 있다. 산책자는 근대 도시의 일상적 삶의 행태를 관찰하고 기술하기에 알맞다. 일상성의 표현이 1930년대 우리 모더니즘 문학의 특징이라고 할 때,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관찰, 실험 등의 연구를 통한 객관적 묘사이다. 이상은 <날개>에서 "나는 우선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것을 알아내이기 힘이 든다"라고 했다. 이 구문들은 이상의 연구를 통한 서술 방식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드러내는데 보다 적합한 것으로 당대의 모더니스트의 박태원에게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요소이다. 

      이상은 자신의 신변적 사실이나 내면을 항상 관찰 연구하여 재현하였다. 그리하여 이상 소설 가운데 자전적 성격을 지닌 작품이 많다. 그의 소설은 대개 역사적 언술의 주체가 등장하여 자아 원점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자전적 형식을 띠고 있다. 이러한 자전적 소설은 이시기 일본 문단에서 유행한 사소설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상의 많은 작품들이 작가 자신의 신변적 사실이나 심리적 상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자전적 글쓰기는 그의 소설에 중요한 특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성과 죽음

      인간에게 있어서 성과 죽음은 가장 중요한 본능이자 욕망이다. 그것들은 인간을 생명체로 규정하는 요소들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문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상의 거의 모든 작품은 이 두 요소 중 어느 하나 또는 둘 모두를 근저로 하고 있다. 그의 문학은 시발과 더불어 결핵이 시작되었다. 결핵은 오히려 그의 문학 창작에 대한 열망을 부추긴 것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 그의 심정은 '펜은 최후의 칼'이라는 말에 잘 집약되어 있다. 첫 각혈 이후 죽음은 여러모로 그를 충격해 온다. 그는 의주통 공사장에 근무할 당시 "펜이 무연히 종이 위를 활주 하는 동안에 그의 의식은 차츰차츰 몽롱하여 들어"가기도 했고, 또한 시를 추방하였다가 "죽어도 떨어지지 않는 그 무엇"이 시라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2차 각혈로 배천온천에 요양 갔다가 운명적으로 금홍을 만난다. 그는 요양은 접어두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의 글쓰기에서 이러한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그의 글쓰기의 원천으로서, 그리고 미적 체험의 원형질로서 그의 문학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결핵은 초기 소설에 타나토스적 정조를 넘치게 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그리고 배천온천에서 금홍과의 만남은 에로스 문학을 형성하게 된다. <12월 12일> <지도의 암실> 등 초기 소설에는 죽음의 정조가 <날개> <봉별기>에 이르러서는 성적 쾌락이 작품 전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종생기> <실화>등 그의 마지막 작품들은 이러한 두 요소들이 혼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죽음에서 사랑으로, 그리고 다시 이 둘의 혼융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 세계는 결국 죽음에 순응하는 자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곧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수용하고, 한편으로 초월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는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 알고 - 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 <권태> 이상

     

      그는 죽음의 공포를 에로티즘의 통해 벗어나려 했지만 그것은 결핵처럼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행위였기에 그의 종말을 더욱 촉진하고 만다. 이상은 한 마리 불나비였는지도 모른다. 불나비에게 있어서 불은 열정과 죽음이 교차하는 황홀한 에로티즘의 세계이다. 불나비는 죽음이 그곳에 개재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열정과 유혹 때문에 다가가서 죽음을 ㅁ자이한다. 이상에게 불은 바로 사랑과 죽음의 충동이었을 것이다. 이상은 그것을 글쓰기로 치환하였다. 그의 글쓰기는 사랑과 죽음의 충동을 넘나들며 이들의 분리와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미학을 수립하였다.

     

    이상 소설의 기법

    1. 심리주의 기법

      이상의 소설의 글쓰기 방식은 자신의 무의식 세계, 말하자면 본능으로 추상되는 세계에대한 글쓰기이다. 이상은 초기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적인 시를 많이 썼는데, 이 역시 그러한 세계를 표현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함축이나 상징의 시적 세계와 맞닿아 있으며, 이상 소설에서 자유연상, 자동기술, 내적 독백 등의 은유적인 글쓰기로 나타난다. <동해> <실화>에서는 자유연상이 전체 작품의 기술 양상으로 확대되기까지 했다. 시공간의 병치, 또는 몽타주는 이미지를 통한 자유연상 장치에 의해 이룩된다. <지도의 암실>은 언어의 리듬적인 진행, 일상적인 문장 구성의 파괴, 띄어쓰기 부재, 구두점 생략 등 쾌락의 원리가 작동하는 기호계적 코라를 보여준다. 언어가 의식적인 통어를 받지 않고 꿈과 같은 상태에서 기술된 것이다. 그리고 <지주회시> <휴업과 사정>등의 작품은 내적 독백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들 작품에서 작가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피화자로 두고 분석하며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내적 초점화라는 심리소설의 일반적인 서술방식이다. 내적독백은 이들 작품 외에도 <날개>에 간헐적으로 나타나 작품 전체의 자의식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무의식의 글쓰기에 속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에로스적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라는 본능 세계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반복 강박, 또는 에로스적 충동이 그대로 작품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주체의 분열, 동시성, 모호성 등 이상이 도달한 모더니즘의 한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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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위티즘의 수사학

      이상은 작품 여기저기에 아이러니, 패러독스, 위트뿐만 아니라 농담, 경구, 에피그램 등 수사학적 장치, 또는 그것과 관련된 언급들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의 텍스트는 마치 독자와의 대결 비슷한 형국을 드러내 보이는데, 그것은 작가가 작품의 요소요소에 수사학적 장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언어의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체로, 또는 창작방법으로 확대되고 있다. 독자에게 암호풀이 비슷한 내기를 하는 것, 그럼으로써 작품 자체를 단순히 읽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상 소설이 지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상 문학의 수사학적 장치들은 작가의 지적 유희와 일면 닿아 있다. 그것들은 넓은 의미에서 위티즘에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언어 위티즘은 폭넓게 나타나는 편이다. ㅁ너저 단어의 압축 또는 대체에 의한 언어놀이를 들 수 있다. 이는 제목에 주로 잘 나타나는데, 우선 <오감도>를 들 수 있다. 이상은 초기에 일문시 <조감도>를 발표한 적이 있다. 오감도는 바로 조감도에서 조가 오로 변형된 것이며, 이는 한문의 한 획을 뺌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띠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동해>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해가 해로 변환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단순히 어린아이의 생기발랄한 모습에서 해골로의 이미지 변환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해골의 이미지를 결합 중첩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며 ㄴ이것은 동해와 해골이 각기 결합되어서 형성된 용어라는 점이다.

      다음으로 패러디적 표현이다.

     

      극유산호 - 요 다섯 자 동안에 나는 두 자 이상의 오자를 범했는가 싶다. 이것은 나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할 일이겠으나 인지가 발달해가는 면목이 실로 약여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산호 채찍을랑 꽉 쥐고 죽으리라. 네 폐포파립 위에 퇴색한 망해 위에 봉황이 와 앉으리라. 

     

      위 예문은 <종생기>의 서두부분이다. 그동안 '극유산호 - '구절은 최국보의 <소년행>의 속 "유각산호 편", 두보의 <송공소부사병유강동겸정이백>, 또는 이백의 <옥호음>에서 패러디되어 온 것 등 다양하게 논의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패러디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아이러니 또는 패러독스와 같은 반대를 통한 표현, 이율배반적인 모순어법을 들 수 있다. 사실 그것들은 결국 위티즘을 형성하거나 위티즘의 효과를 내는 장치들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가) 꿈에는생시를꿈꾸고생시에는꿈을꿈꾸고 어느것이나재미있다
    (나) 그러니까 선이나 내나 큰소리를 말아야 해 일체 맹서하지 말자 - 허는 게 즉 우리가 해야 할 맹서지
    (다) 소리 있어 가로대 너는 몇 살이뇨? 만이십오세와 열한개월이올씨다. 요사로구나. 아니올씨다

     

      (나)에서 나오는 '생시에는 꿈을 꿈꾸고'는 아이러니이지만 전체로는 하나의 패러독스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패러독스에 논평자적 진술이 덧보태진 것으로 이상 특유의 문체이자, 그의 문체의 한 특징이다. 또한 (나)와 (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패러독스에 가깝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을 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따는 정신병이나 고치겠다"를 들 수 있다. 이 구절들에서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는 위티즘을 형성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이상은 철저한 기교주의자이다. 그의 실험성은 언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그리고 외연과 내포의 거리두기, 또는 새로운 결합으로 특정 지워진다. 그는 끊임없이 언어유희나 글자 수수께끼 같은 기호놀이, 아이러니, 패러독스, 위트, 경구, 농담, 희화, 그리고 패러디, 인유 등의 수사학적 실천을 행했다. 이것들은 결국 현실과 내면의 괴리, 또는 대상의 유희화에서 빚어진 위티즘의 수사학이다. 기표와 기의의 해체, 또는 다의성의 문학을 형성한다. 그것은 곧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향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3. 시간관념의 변혁

      이상의 소설에서는, 그의 시 또한 그러하지만, 시계시간, 즉 객관적 시간이 철저히 부정되거나 파괴되어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침투되어, 미래로 달아나서 과거를 볼 수도 있고, 과거로 달아나서 미래를 보기도 하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그의 소설에는 정연한 질서,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자연적 시간이 아니라, 공간적 성격을 띤 심리적 시간이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서는 작중인물의 행위나 사건의 전개가 비인과적으로 펼쳐진다. 보다 앞과 보다 뒤, 보다 먼저와 보다 다음이 서로 경계를 뛰어넘어 결합하거나 동시적으로 병존한다. 순서에 있어 일종의 자유가 생겨, 멈추거나 역행할 뿐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구역을 마구 넘나들며 유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성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계기성, 연속성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어떤 한 시점과 다른 시점 사이를 끊임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이상 소설의 시간은, 그러므로 이전의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베르그송적 시간이라 할 수가 있다.

      내면의식을 중시한 소설들은 시간을 대개 이와 같은 측면으로 인식한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 시간 단위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의 현재(기억), 현재의 것의 현재(지각), 미래의 것의 현재(예기)라는 것으로 파악할 때 이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심리소설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내적 독백이나 외부시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의식활동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하여 주는 자유연상과 같은 기법은 모두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는 욕구에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시간의 철저한 부정, 연대기적 순서로부터의 탈출을 기도하는 이상의 남다른 시간의식은 그의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시계를 통해 형상화된다. 그의 문학에서의 시계는, 그의 시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대부분이 고장 나 있는 시계이다. 멈춰 서 있거나 틀리게 가는 시계, 공준성을 잃어버린 그래서 말라 굳어져 먹을 수 없는 식사처럼 일상적인 의미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죽은 시계이다. 그리하여 바보 같고 어리석은 시계는 내동이 쳐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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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 문헌
    이성미 / <새 자료로 본 이상의 생애> / <<문학사상>> / 1974.4월호 / 352면
    장윤익 / <문학이론의 현장> / 문학예술사 / 1980 / 122면
    문종혁 / <몇 가지 이의, 문학사상> / 1974.4월호 / 348면
    김용성 / <한국 현대문학사 탐방> / 국민서관 / 1973 / 272면
    김우종 / <30년대 작단의 문학사적 변모> / <<국어국문학>> / 37.38호 / 1967 / 72면
    루카치 / <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 /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 / 인간사 / 1988 / 21쪽

    이상 / <선에 대한 각서> : 임종국 편 / <<이상 전집>> / 제2권 / 태성사 / 1956 /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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