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5. 20.

    by. 건물주님이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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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대

    • 1908년 1월 11일 강원도 춘천부 남내이작면 증리 427번지, 지금의 강원도 춘천군 신동면 증리에서 부친 김춘식 모친 청송 심 씨의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 10대조 김육은 대동법을 실시한 실학의 선구자였으며, 9대조 김우명은 현종의 국구(임금의 장인)엿고 숙종의 외할아버지였다.
    • 고조부 김기순 때 춘천 실레 마을로 이주했다.증조부 김병선은 실레 마을에 화서학파의 거유인 김평묵을 초빙, 학당을 열고 자제들을 교육케 했다. 화서학파의 위정척사 학품을 이어받은 조부 김익찬은 춘천 의병 봉기의 배후 인물로 재정 지원을 했다.
    • 조부 때 6천석 추수를 하는 춘천의 명가가 되었다. 음직으로 도사 벼슬을 제수받았다. 
    • 김유정이 탄생하는 그해에 춘천의 2차 의병봉기로 정미의병의 기세가 드높았다

    1910년대

    • 1914년 11월 26일 유정의 조부 도사 벼슬을 했던 김익찬이 사망하였다. 이때부터 부친 김춘식을 참봉으로 호칭하였다. 이해 겨울에 한양의 종로구 운니동에 대저택을 마련하고 이사하였다. 춘천에 집을 그냥 두고 소작농으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였다.
    • 1915년 7세. 3월 18일 어머니 청송 심씨 사망하고, 춘천에 내려갔던 형 유근이 미처 오지 못하자 홀로 상주가 되었다.
    • 1917년 9세. 5월 23일 아버지 김춘식이 사망하였다. 고아가 된 김유정은 형님과 형수 누님의 사랑을 받았다. 운니동에서 관철동으로 이사하고 1919년 봄까지 3년 동안 학문 공부와 붓글씨를 익혔다. 김유정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 고전지식은 이때 습득된 것이다.

    1920년대

    • 1920년대 12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재동공립보통학교가 있던 지역은 당시 우리나라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중심지였다.
    • 1921년 13세. 3학년으로 월반.
    • 1923년 15세. 재동공립보통학교 4년 (제16회) 졸업. 4월 9일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검정으로 입학하고 숭인동 80번지로 이사하였다. 학적부에는 가족 11명, 형제 2명, 재산 5만 원, 성질은 질박, 키는 5척이라 기재되어 있다. 집에서 이름을 김나이로 고쳐서 불렀다. 소설가가 된 안회남과 같은 반으로 각별히 친하게 지낸다.
    • 1926년 18세. 휘문고보 3학년을 마치고 휴학. 
    • 1927년 19세. 휘문고보 4학년에 복학
    • 1928년 20세. 형 유근 가족이 춘천 실레로 이사하고, 유정은 복익동 삼촌집에 얹혀 지낸다. 이때, 인간문화재 박녹주 공연을 처음 관람한다.
    • 1929년 21세. 휘문고보 5년 졸엄(제21회). 삼촌댁에서 사직동 둘째 누님 유형 집으로 거처를 옮김(누님은 이혼 후 양복공장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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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 1930년 22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6월 24일 학칙 제26조에 의거, 제명처분 당한다. 유정은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자퇴했다고 말한다. 박녹주를 짝사랑했으나 끝내 거절당하고, 춘천 실레에 내려와 방랑생활을 한다. 들병이와 친해짐. 늑막염이 재발하고, 안회남의 권고로 소설을 쓰게 된다.
    • 1931년 23세. 4월 20일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다시 입학. 그 후 자퇴함(퇴학자 명단에만 있을 뿐 상세한 기록은 없음). 실레 마을에 야학당을 열고,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 조직한다. 농우가를 지어 불렀다
    • 1932년 24세. 야학당을 금병의숙으로 넓히고 간이학교로 인가 받고 느티나무를 식목한다. 6월 15일 처녀작 단편 심청을 탈고한다(4년 뒤인 1936년 중앙지에 발표). 충남 예산 등지의 금광을 전전하게 된다
    • 1933년 25세. 서울에 올라와 사직동에서 누님과 함께 기거한다. 폐결핵 발병진단을 받는다. 1월 13일 <산골 나그네>를 탈고하고, 안회남의 주선으로 제1 선지 3월호에 발표한다. 8월 6일 <총각과 맹꽁이>을 탈고하고, 신여성 9월호에 발표한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작품으로 쳐서 처녀작은 <산골 나그네>가 된다. 사직동에서의 유정은 톨스토이가 되고자 한다. 이석훈, 채만식, 박태원, 이상 등을 만난다.
    • 1934년 26세. 누님이 사직동 집을 처분하고 혜화동 개천가에 셋방을 얻어 밥장사를 시작한다. 8월 16일 <정분>을 탈고, 9월 10일 <만무방>을 탈고, 12월 10일 <애기>를 탈고, <노다지>, <소낙비>를 12월에 탈고 (1933년의 <따라지의 목숨>을 1934년에 <흙을 등지고>로 개작하였고, 신문사와 협의하여 <소낙비>가 됨). 안회남이 대신 신춘문예 응모작으로 부치게 된다.
    • 1935년 27세.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문예 현상모집에 <소낙비>가 1등으로 당선된다.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노다지>가 가작으로 입선된다. 1월 20일 아서원에서 신춘문예현상 1등 당선 축하회를 열고, 6월 3일 백합원에서 조선문단사가 주최한 문예좌담회에 참석한다. 김유정은 안회남, 김남천, 이학인, 박영호, 이선희, 함대훈, 이헌구, 이석훈, 김환태, 이무영, 한인택, 서항석, 정지용, 김희규, 이하윤, 김광섭, 방인근, 최정오와 함께 연회에도 참석했다.
    • 단편 <금따는 콩밭> (<<개벽>> 3월호), <금> (발표지 미상, 1월 10일 탈고), <떡> (<<중앙>> 6월호), <만무방> (<<조선일보>> 7월), <산골> (<<조선문단>> 7월호), <솥> (<<매일신보>> 9월 <정분>을 개작한 작품), <봄봄> (<<조광>> 12월호) 등을 발표한다. 이 한해에 소설 9편과 수필 <잎이 푸르러 가시든 님이> (<<조선중앙일보>> 3월 6일), <조선의 집시 - 들병이 철학> (<<매일신보>> 10월), <나와 귀뚜라미> (<<조광>> 11월호) 등 3편을 발표한다. 6월 3일 <조선문단>이 주체한 문예좌담회에서 이태준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되고, 구인회의 후기 동인으로 참여한다. 이상과 깊은 친분을 가지게 된다. <안 해>를 사해공론 12월호에 발표하여 문단의 찬사를 받게 된다.
    • 1936년 1월부터 8월까지 9편의 소설과 4편의 수필을 발표한다. 단편 <심청> (<<중앙>> 1월호), <봄과 따라지> (<<신인문학>> 1월호), <가을> (<<사해공론>> 1월호), <두꺼비> (<<시와소설>> 3월호), <봄밤> (<<여성>> 4월호), <이런 음악회> (<<중앙>> 4월호), <동백꽃> (<<조광>> 5월호), <야앵> (<<조광>> 7월호), <옥토끼> (<<여성>> 7월호)가 각각 발표됨. 미완의 장편소설 <생의 반려>는 중앙 8, 9월호에 연재됨.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 <전차가 희극을 낳아>, <길> 등을 5월에서 8월 사이에 발표하고 <행복을 등진 정열>은 여성지 10월호에, <밤이 조금만 짤렀드면>은 조광지 11월호에 발표. 단편소설 <정조>는 조광지 10월호에, <슬픈 이야기>는 여성지 12월호에 발표한다. 마지막 여인 박봉자를 짝사랑하여 구애하였으나 거절당한다.
    • 1937년 병이 깊어져 김문집이 병고작가 구조운동을 벌인다. 서간문 <문단에 올리는 말씀>을 조선문학 1월호에 게재한다. 수필 <강원도 여성편> (<<여성>> 1월호), <병상 영춘기> (<<조선일보>> 1월 29일~2월 2일) 발표한다. 2월 조카 진수에 의지하여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신상곡리 100번지의 매형 유세준의 집에 옮겨와 요양 치료함. 소설 <따라지> (<<조광>> 2월호), <땡볕> (<<여성>> 2월호), <연기> (<<창공>> 3월호) 발표. 서간문 <병상의 생각>을 조광지 3월호에 발표하고, 세상을 뜨기 11일 전인 3월 18일 <필승 전>으로 되어 있는 마지막 편지를 안회남에게 보낸다.
    • 1937년 3월 29일 오전 6시 30분에 30세의 나이를 다 채우지 못하고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상곡리 100번지 매형 유세준의 집에서 사망한다. 서대문 밖(홍제동 화장터)에서 유해는 화장되어 한강에 뿌려진다. 이 해의 사후 발표작으로 수필 <네가 봄이런가> (<<여성>> 4월호), 단편소설  <정분> (<<조광>> 5월호), 번역동화 <귀여운 소녀> (<<매일신보>> 4월 16일~21일), 번역 탐정 소설 <잃어진 보석> (<<조광>> 6월~11월호)가 발표된다
    • 1938년 단편집 <동백꽃>이 발간된다
    • 1939년 사후 발표된 소설로 <두포전> (<<소년>> 1~5월호), <형> (<<광업조선>> 11월호), <애기> (<<문장>> 12월호)가 있다.

    김유정의 작품 경향

      1930년대 김유정의 소설은 어둡고 삭막한 농민들의 삶을 때로는 희화적으로 때로는 해학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농민들의 끈질긴 생명력의 저변을 질박하게 펼쳐놓고 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소낙비>, <금따는 콩밭>, <노다지>, <만무방>, <봄봄>, <동백꽃>, <땡볕>, <따라지> 등은 대부분 그 무대를 농촌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무지하고도 가난한 농민들을 등장시킨 것이 많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비참한 현실의 ㅁ누제를 비판적으로 그려내는 데에만 목표를 두지 않고 있다. 농민의 궁핍한 삶을 초래하고 있는 착취 구조에 대한 비판이나 분노가 강하게 표현된 경우도 많지 않다 오히려 그의 관심은 토속적인 구어와 생동하는 문체를 바탕으로 하는 해학과 반어의 기법을 통해, 농민들의 순수한 삶과 끈질긴 생명력을 그려내는 데에 있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암울한 현실 속에서의 좌절과 분노를 보여주기보다는 끈질기게 삶에 집착하는 강한 생존 본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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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 문헌

    권영민 / 한국현대문학사 / 민음사 / 2002

    최병우 / 김유정 소설의 다중시점에 관한 연구 / 한국현대소설학회 현대소설연구 / 2004

    김유정, 채만식 / 20세기 한국소설 5 / 창비 / 2005

    인터넷 김유정 문학촌 http://김유정문학촌 (kimyouje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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