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5. 19.

    by. 건물주님이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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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3년 : 음력 11월 24일 경북 경주시 성건리 186번지에서 김임수와 허임순 사이에 5남매 중 3남으로 출생. 아명 창봉, 본명은 창귀, 자는 시종
    • 1920년 : 향리에 있던 경주 제일교회 부속 계남소학교에 입학
    • 1926년 : 대구 계성중학교에 입학하여 2년 수료. 부친 별세
    • 1928년 : 서울로 올라와 서울 경신고등보통학교 3학년으로 전입학
    • 1929년 : 4학년에서 중퇴하고 귀향. 그 뒤로 4년 동안 세계문학을 섭렵하고 동양의 고전에 심취. 그 속에 표현되고 있는 인간과 신과 자연과 세계에 큰 관심을 가짐. <<매일신보>>와 <<중외일보>>에 시 <고독>, <방랑의 우수> 미치 수필을 발표
    • 1933년 : 서정주와 친분을 가짐. 이 무렵 서정주는 소설을, 김동리는 시 또는 극시극 습작. 극시 <연당> 전 5막을 탈고(발표되지 않았음). <<가톨릭 청년>>에 <망월> 등 몇 편의 시가와 수필을 발표
    • 1934년 : <<조선일보>> 신춘현상모집에 시 <백로> 입선
    • 1935년 : 단편 <화랑의 후예>로 <<중앙일보>> 신춘현상모집에 당선, 문단에 등단. 고향에서 당선소식을 접함. 현상금 50원을 받아 들고 작품을 쓰기 위해 진주와 하동 사이에 있는 고찰 다솔사로 들어갔다가 해인사로 옮겨 두 번째 작품 <산화>를 씀. 이주홍, 허민, 최인욱, 조연현, 김종택, 홍구범 등과 교유. 본가 경주를 떠나 사천으로 이사
    • 1936년 : <<동아일보>> 신춘현상모집에 단편 <산화>가 또 당선됨으로써 문단의 화제를 일으킴. 해인사를 떠나 고향에 들렀다가 상경, 작품 생활을 시작. 단편 <무녀도>를 <<중앙>>에 단편 <바위>를 <<신동아>>에 단편 <술>을 <<조광>>에 단편 <산제>를 <<중앙>에 발표. 서울 생활에 실의를 느끼고 다솔사로 돌아감
    • 1937년 : 다솔사 근처에서 야학교사를 함. 근동에 인기가 대단하여 나중에는 다솔사 소속 전도관을 빌려 '광명학원'을 창설함. 단편 <솔거>(<<조광>>, '불화'로 개재), <어머니> (<<풍림>>) 등 발표
    • 1938년 : <잉여설>을 <<조선일보>>에 발표. 김월계와 혼인
    • 1939년 : 일제하의 어용문화단체인 문인보국회, 국민문학연맹 등의 가입을 거절.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한 평론 <순수이의> (<<문장>>) 발표
    • 1940년 : 단편 <동구 앞길> (<<문장>>), <소녀> (<<인문평론>>) 등 일제 말기의 허무의식이 저류 하는 일련의 작품 발표
    • 1942년 : 단편 <소녀>와 <하현> (<<문장>>)이 총독부의 검열로 전문이 삭제당함. 6년 동안 열성을 다하여 교편을 잡았던 광명학원이 일제에 의해 폐쇄. 큰 형 김범보가 구속되자 절망과 분노를 안은채 만주 등지를 방랑
    • 1946년 : 문단의 좌우투쟁 개입. 민족진영에 입각하여 순수문학을 옹호. 전국문필가협회 결성에 참여. 곽종원, 서정주 등과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 초대회장으로 선출됨. 단편 <윤회설> (<<서울신문>>) 등을 발표
    • 1947년 : 북한문학예술동맹 중앙상임위원회의 소위 원산문학동맹에서 발간한 시집 <<응향>>에 대한 결정서사건이 터지자 이에 조연현, 임긍재와 앞장섬. 반박문 <문학과 자유의 옹호>를 <<백민>>에 발표. 일상사회에서보다 몇 갑절이나 더 작가의 자유를 박탈하고 인간성을 봉쇄하는 사태라고 그들의 결정서를 통렬히 규탄. 이 사건으로 <<응향>> 중의 시인 한 사람인 구상이 원산에서 월남해 옴. 단편 <달> (<<문화>>) <혈거부족>(<<백민>>) 등을 발표. 순수문학론을 둘러싸고 좌익 문인들과의 논전에서 그는 처음으로 본격문학이란 말을 사용. 경향신문 문화부장이 됨. 첫 창작집 <<무녀도>>를 을유문화사에서 간행
    • 1948년 : 김승규, 김동석 등 좌익 비평가와의 문학논쟁이 절정을 이룸. 그들의 빗발 같은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공산주의 문학을 매도함. 제1평론집 <<문학과 인간>>을 백민문화사에서 간행. 경향신문 문화부장을 그만두고 민국일보 편집부장이 됨. 전국문화예술단체 총 연합회 선전부장 피선. 단편 <역마>(<<백민>>) 등을 발표
    • 1949년 : 장편 <해방(제1부)>을 <<동아일보>>에 연재. <<황토기>>를 서순사에서 간행. 순문학지 <<문예>> 주간으로 피임. 서울신문 출판부차장에 피임. 한국문학가협회 결성. 소설분과위원장에 피선.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에 강의를 나감
    • 1955년 : 한국문학가협회 대표위원으로 피선. 장편 <사반의 십자가>를 <<현대문학>>에 연재. 중편 <흥남 철수> (<<현대문학>>), 단편 <실존무> (<<문학과 예술>>), <밀다원 시대> (<<현대문학>>) 등을 발표. 제3회 아세아 자유문학상 수상
    • 1957년 : 소설 <아가> (<<신태양>>), <목공 요셉> (<<사상계>>) 발표. <사반의 십자가>를 일신사에서 간행
    • 1958년 : <<실존무>>와 <<춘추>>를 간행. 장편 <사반의 십자가>로 예술원 문학부문 작품상 수상
    • 1959년 : 장편 <자유의 기수>를 <<자유신문>>에 연재
    • 1960년 : 장편 <이곳에 던져지다>를 <<한국일보>>에 연재
    • 1963년 : 예술원 문학분과 회장 피선. 단편 <등신불>을 <<사상계>>에 발표
    • 1964년 : 단편 <늪>을 <<문학춘추>>에 <심장 비 맞다>를 <<사상계>>에 발표
    • 1965년 : 민족문화중앙협의회 부이사장, 민족문화추진위원회 이사로 피선. 단편 <성문거리>를 <<사상계>>에 발표
    • 1966년 : 한국예술윤리위원회 위원에 피임. 단편 <송추에서> (<<현대문학>>), <백설가> (<<신동아>>), <까치소리> (<<현대문학>>) 등을 발표
    • 1967년 : <까치소리>로 3.1 문화상 예술부문 본상 수상
    • 1968년 : 중편 <극락조>를 <<중앙일보>>에 연재. <<김동리선집>> 전 5권을 삼성출판사에서 발행. <<월간문학>> 주간으로 문예지 창간. 12월,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 수장
    • 1971년 : 장편 <아도>를 <<지성>>에 연재
    • 1973년 : 창작집 <<까치소리>>를 일지사에서 간행.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장 취임
    • 1974년 : 장편 <삼국지>의 후편인 <대왕암>을 연재. <<이곳에 던져지다>>를 선일문화사에서 간행
    • 1977년 : <저승새> (<<문학사상>>)을 발표. <<김동리 역사소설>>을 지소림에서 간행
    • 1978년 : 장편 <을화>를 <<문학사상>>에 발표. <<꽃이 지는 이야기>>를 태창 문화사에서 간행
    • 1979년 : <만자동경> (<<문학사상>>)을 발표. 김동리 소년소녀소설집 <<꿈같은 여름>>을 자유문화사에서 간행. 중앙대학교 정년퇴직
    • 1982년 : <을화>가 노벨 문학상 본선에 진출. 장편 <사반의 십자가>를 개작 간행
    • 1990년 : 소설가협회 회장으로 피선. 7월 30일 뇌졸중으로 쓰러짐
    • 1995년 : 6월 17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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