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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한국인 내지 동야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면서 문학작품을 창작해 나간 사람들을 우리는 전통 지향적 보수주의 계열의 문학자라고 부를 수 있거니와, 김동리는 소설의 영역에서 이들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바로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나타난 전통 지향적 보수주의의 성격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김동리로 하여금 이러한 입장을 택하도록 이끈 원인으로는 계급적 요인, 지리적 요인, 가정적 요인, 교육적 요인, 심리적 요인 등을 두루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문학 활동의 전 기간을 통해 이러한 입장을 굳게 지켰으며, 따라서 그의 문학은 기본적 성격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대략 네 단계 정도의 구분이 가능함을 알게 된다.
그중에서 제1기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그가 처음 소설가로 등장한 1935년부터 해방 전까지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전통적인 한국인으로서의 자기 정체를 고집스럽게 지켜 나가고자 하는 태도가 일제 강점기라는 상황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그것 자체로서 저항의 뜻을 지닐 수 있었으며 또한 민족적 순수성을 지키는 길이 되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시기의 김동리는 전통사회의 붕괴라는 문제와 식민지인으로서의 아픔이라는 이중의 짐을 짊어진 형국이었으며, 그 결과 비극의 영역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나타내게 된 점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그의 작가적 출발은 <화랑의 후예>와 <산화>로 시작되었으나 이 두 작품은 모두 모색기의 산물로 간주되며 그가 진정으로 자기의 독자적이 세계를 확립한 것은 <무녀도>와 <바위>에 이르러서였다. 그 후 김동리는 <술>과 <솔거> 연작의 부진을 딛고 <황토기>, <찔레꽃>, <동구 앞길> 등 <무녀도>, <바위>의 계보를 잇는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은 후 시대적 고민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작품 <혼구>로써 일단 제1기를 마무리한다.
반응형김동리 소설의 제2기는 이른바 해방기로 불리는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 이 시기에 그는 우익 문단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좌익과의 대결을 일선에서 담당하는데, 여기서 제시된 그의 논리는 이른바 제3기 휴머니즘이 제3휴머니즘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보듯 상당한 혼란을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좌익에 대한 대결 의식을 창작 분야에까지 연장시켜 <지연기>, <형제>, <해방> 등 여러 편의 반공적 소설을 썼는데 이들 역시 성공적인 작품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정신적 기조는 변함없이 전통 지향적 보수주의에 놓여 있었으며 창작의 영역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도 역시 이 부분에서였으니, 그 예로는 <달>과 <역마>를 들 수 있으며, <산화>와 <무녀도>를 개작한 사실도 여기에 관련된다. 그리고 <미수> 및 <어머니와 그 아들들> 같은 작품은 <바위>, <찔레꽃>, <동구 앞길> 등에 이어지는 것이지만 그 문학적 의미는 크지 않다고 생각된다.
다음 제3기는 6.25가 터진 1950년부터 대략 1960년대 초까지로 잡을 수 있다. 이 시기에 김동리가 쓴 소설들은
- 전쟁체험의 정리 및 의미부여 작업을 목적으로 삼은 단편들 : <귀환장정>, <밀다원시대>, <실존무>, <흥남철수>
- 전쟁과 관련된 중, 장편 <애정과 윤리>, <자유의 역사> 및 그와 비슷한 성격의 중, 장편 <이곳에 던져지다>, <비 오는 동산>, <해풍>으로서 통속성이 강한 작품들
- 무교 혹은 민간신앙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작품들 : <당고개 무당>, <자매>
- 동양의 고대에로 관심을 확대한 것들 : 신라인을 내세운 <악성>, <원앙생가>, <여수> 등과 중국의 고대에서 소재를 구한 <춘추>, <용>, <등신불>
- 기독교를 소재로 한 작품들 : <사반의 십자가>, <목공 요셉>, <부활>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 밑바닥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이 전통지향적 보수주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시기의 작품들을 살펴볼 때 발견되는 흥미로운 특징으로는, 무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점, 그 대신으로 정치원리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바 그 기조를 이루는 것은 전통적, 보수적 통치사상이라는 점, 기독교를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 철저히 동양인으로서의 시각을 지키고 있다는 점, 1,2의 계열에서 보듯 작품 속에서 일상세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 1960년대 중엽부터는 김동리의 소설에 다시 새로운 면모가 부여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는바, 그 첫째는 일상적 세계와 비일상적 세계의 융합 내지 일원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노력이 강력히 전개된다는 점이며, 그 둘째는 문화적 규범의 힘이 다시 줄어들고 무교적 색채가 짙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1960년대 중엽부터를 김동리 소설의 제4기로 잡아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 시기의 모든 작품이 방금 말한 바와 같은 특징을 일률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심장 비 맞다>, <백설가>, <송추에서>처럼 그러한 특징을 약하게밖에 갖지 않은 것도 있고 <아도>나 <감람 수풀>처럼 제3기 문학의 4,5번 항목에 바로 이어지는 것도 있으나 다수의 작품은 분명히 위에서 지적한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그중에서 <유혼설>과 <눈 내리는 저녁때>는 심령과학의 세계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데 그친 것으로 소설적 형상화가 미약하나 <늪>, <윤사월>, <까치소리>, <꽃이 지는 이야기> 등은 그런 수준을 넘어서고 있으며 특히 <저승새>와 <을화>는 이 계열의 작품들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놓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략 이상과 같은 모습으로 전개되어 온 김동리의 소설은 정신사적으로 어떠한 의의를 지니는가 하는 것이 그다음의 문제로 제기되는 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는 두 가지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첫째는 전통 지향적 보수주의 일반이 한국의 현대 정신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논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제시될 수 있으나, 그것이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갖는다는 사실 자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고려하여야 할 것은 한국의 현대문학사 속에서 전통 지향적 보수주의가 전개되어 온 양상인바,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그것은 1930년대 무렵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였고 해방 후 남한의 문단에서 일시적으로 주류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오늘날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전통 지향적 보수주의의 문학을 소설 분야에서 개척한 존재이면서 또한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존재로 남아 있는 사람이 김동리인 것이다. 여기에서 김동리 소설의 역사적 위치는 자못 분명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 참고 문헌
김동리 / 이동하 / 건국대학교 출판부 / 1996
김동리 / 이태동 / 벽호 / 1993
김동리 / 유기룡 / 살림 / 1996
김동리 삶과 문학 / 김정숙 / 집문당 / 1996
김동리 소설 연구 / 조회경 / 국학자료원 / 1999
김동리 소설 연구 / 이진우 / 푸른 사상/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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