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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 분단 문제에 대한 적극적 관심
오영수는 일찍이 분단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룬 작가이다. 오영수는 60년대 들어서 분단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게 되는데 이는 60년대가 50년대 전쟁 직후의 냉전적 상황애서 다소 벗어난 시기였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분단의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주요한 문제였기에 오영수 역시 이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는 첫 작품으로 <오도영감>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분단이 빚은 이산가족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박만수는 나이 70세에 손자를 이북에 두고 온 영감이다. 아들은 3.8선 근방에서 전사하고 박만수 노인은 혈혈단신이 된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통일의 길은 아득하게 멀고 북에 두고 온 손자와 만나는 문제가 그에게는 큰 일로 생각된다. 자기가 죽으면 후손도 없는 사람으로 처리될 생각을 하자 박노인의 마음은 착잡해진다. 그래서 북에 있는 손자를 자기의 호적에 올리려고 오도청에 매일 드나드는 바람에 그의 별명은 오도영감이 되고 말았다.
아니, 내 말은 이거웨다. 자식 놈은 전사햇디요. 내마저 통일을 못 보고 죽어 버리면 어케되갔시오. 내 뒤가 없다 말이웨다. 그러니끼니 내 말은 이북에 있는 내 손자 놈을 여기 내 호적과 함께 올려달라 이거웨다. 그래야만이 댐이라도 아무개 자식, 아무개 손자하고 핏줄을 찾지 앙카시오. 다 같은 처지면서 그걸 글쎄 못해주겠다니,......(중략)...... 내 나이 틸십을 바라보는데 언제 죽을 디 누가 알갔시오. 몇 백 니 넘어 혈육을 뻔히 두고서...... 내 덩말이지 자다가도 이것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웨다.
이산가족으로서 가족과의 재결합에 대한 소망 못지않게 후손과의 단절은 노인에게 있어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호적에 올릴 수 없다는 담당자의 이야기가 법적으로 타당하다고 보면 우리는 여기에서 분단과 이산의 비극을 동시에 보게 되는 셈이다. "철턴디 원수인 일본과도 화해를 하자는데 같은 땅, 같은 백성끼리 이게 무슨 꼴이며 남의 나라 보기에도 남세시럽지 않캈시요"라는 오도영감의 말과 죽은 오도영감에게 '인젠 귀신이라도 설마 손자에게로 갔겠지. 아무리 삼팔선이기로 귀신마저야 못 갈라고'하는 어떤 노인의 말에서 우리 민족의 슬픈 운명을 보면서 한편으론 이러한 소박한 노인들의 꿈을 가로막는 분단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다.
오영수는 이후 줄곧 분단과 이산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데, 70년대에 발표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새> 역시 이러한 작품이다. <새>는 남북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슬픔과 한국전쟁이 지닌 역사성을 관련지어 당시 민족문제의 한 단면을 조류학자의 비극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남북이 갈라진 현실에서 아버지 원홍구 박사는 이북의 조류학자이고 그의 아들은 남한에서 조류 연구를 하고 있다. 서로 소식을 알지 못하다가 조류 연구를 위해 이남의 아들이 발목에 가락지를 채워 날려 보낸 '찌르기'가 인간이 넘지 못하는 38도선의 두터운 장벽을 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그의 아버지 손에 잡히게 된다. 그리하여 부모가 살아 계신 것을 알면서도 서로 떨어져 그리워만 해야 하는 비극을 그린다. 그런던 중 이남의 아들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소련, 미국, 뉴질랜드를 거쳐 결국 일본을 통해 전해 듣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여러 나라를 거쳐 듣게 되는 아이러니는 이 시대 분단이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비극을 야기시켰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분단과 이산은 우리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에 따른 엄청난 비극과 희생과 고통은 우리 민족이 지닌 무거운 짐이다. 이런 문제라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누구나 함께 고통을 나누어 가지고 있으며 작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의 상처가 준 아픔과 그 치유의 문제를 다루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이산가족의 문제를 통해서 분단 상황을 검증했다는 점에서 <오도영감>과 비슷한 데가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끝에 밝힌 대로 남북 이산가족 찾기 운동인 적십자회담 선언이 있기 한 달 전에 발표되었는데 이 점에서 작가는 당시 한국 사회가 가장 시급하고 절실하게 여겼던 현실 문제를 적절히 반영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이후 북한에서도 이 내용을 소설화했다.
<오도영감>과 <새>는 분단 상황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생사여부와 결합, 나아가 통일 등 우리 민족의 당면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이산가족의 고통, 재결합에의 열망을 그리고 있으며 나아가 분단 상황의 극복은 이데올로기 보다 피, 곧 민족애와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라는 암시를 보이고 있다.
한편 오영수는 분단과 이산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분단에 얽힌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그로 인해 희생된 자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작품으로는 <머루>를 들 수 있다. <머루>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4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깊은 산골에 살고 있는 무식하지만 가난하고 선량한 이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시대의 변화를 알아차릴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했고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머루>에 등장하는 석이와 분이는 서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순박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평화스러운 마을에 빨치산들이 나타나 석이의 어머니와 분이의 아버지가 죽고 마을은 쑥밭이 되는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한다.
세상 일이란 석이 엄마나, 석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석이가 뒷간 옆에 달아 붙여서 소마굿간을 세우려고 다질 무렵 해서 용숫골로 연목 베로 간 바로 그날이었다. 동네 앞 논들에서 난데없이 두 방의 총소리가 들려왔다. 동네사람들은 읍에서 산돼지 사냥이나 온 줄 알고 길목으로 나와 봤다. 그러나 너무나 의욋 일이었다. 각가지 복장을 한 칠 팔명의 사람들이 총을 겨누고 몽둥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총을 든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우리는 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해서 투쟁하는 빨치산들이다. 우리에게 협력하지 않는 자는 죽이고 말 테다!" 이렇게 고함을 지르고 외치자 일제히 와아하고 동네 안으로 달려왔다. 동네 사람들은 그만 엎어지락 자빠지락 골목 안으로 논들 개골창으로 산비탈로 마구 달려들었다.
이 인용문을 보면 주민들은 총소리를 듣고서도 사냥을 우선 생각하고 있으며 인민공화국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이해할 능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협력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소리에 도망을 치고 있을 뿐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인식 능력이 전혀 없는 소박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와 같이 순박한 자들이 인간과 자연의 융합된 경지에서 삶의 행복을 영위하다가 이것이 이념의 분쟁에 의하여 깨어지는 사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발단 부분으로 여겨지는 곳에 석이 어머니의 과거회상담을 배치시켜 장차 일어날 사건을 예시해주고 있다. 머루가 한창 열리는 평화로운 가을의 깊은 밤, 기름등잔을 중심으로 석이 어머니는 석이와 그의 여동생 그리고 분이에게 그녀가 시집온 지 두 해재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준다.
- 그 해사 말고 가물기도, 가물기도 상평 아래 윗동네 사이에 물쌈이 벌어져서 그런 난리가 어딧겠나...... 그때 웃마을 사람들이 가래(삽)랑 몽둥이랑 들고 나섰고 그래서 상평들 붓도랑에는 핏물이 흘러내리고 - 아랫동네 사람들은 윗동네 논두렁을 헐고 - 이래서 온 여름내 물쌈을 하는 동안 논바닥은 뽀얗게 타 버렸지 - 그 이듬해 봄에는 마을 사람들이 부증으로 많이 죽고, 시아버님도 그때 돌아가셨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우리도 그곳을 떠나 용천골로 들어왔지 - 그 후도 들으니까 상평골도 영 망했다더라. 이야기를 마친 석이 엄마는 또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비만 오면 그칠 물싸움도 아닌 싸움에 무고한 백성들이 까닭도 없이 쓰러져 가는 사실을 석이 엄마는 아는지 모르는지......
이와 같은 과거 회상 담은 장차 전개될 동족상잔의 비극을 예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과거 회상담에 이어 "그러나 비만 오면 그칠 물싸움도 아닌 싸움에 무고한 백성들이 까닭도 없이 쓰러져가는 사실을 석이 엄마는 아는지 모르는지"라고 함으로써 석이 엄마에게도 그와 같은 비극이 미칠 수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달이 밝은 날 밤은 앞산에서 별나게도 소쩍새가 울었다'라고 한 부분도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따라서 빨치산의 출현에 서술자는 '너무나 의욋 일이었다'라고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이는 이미 과거 회상담 속의 물싸움 이야기에서 예시되고 상징화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 <머루>는 순박한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에도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침투해 옴으로써 이념의 폭력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전쟁 직전의 동족상잔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빨치산의 출현과 이로 인한 마을 사람들의 죽음이 물싸움만큼의 명분도 없는 싸움인 것과 그 싸움이 참으로 비극적인 것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작품으로 미뤄 보건대 오영수는 현대 우리 민족의 최대 관심사인 분단의 문제 특히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문제에 선구적 관심을 보였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역사와 관련된 분단상황에 대한 성찰은 빨치산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세계,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그린 작품들로 이어져 오영수는 분단상황을 끊임없이 형상화한 작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분단상황을 다룬 오영수의 일련의 작품들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고 잇는 것들을 제시하여 분단상황을 폭넓게, 깊게 인식하고, 그 극복방안을 모색하는 데에는 미흡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오영수 문학세계의 변모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그가 역사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통설을 재고하게 한다.
오영수는 1960년대 이후 분단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이산가족의 문제라는 구체적 설정을 통해 분단이 이 민족, 민중에게 어떠한 비극을 가져왔는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분단에 얽힌 이데올로기적 충돌 그리고 그 와중에 희생된 자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보여 민족사적 비극에 대한 진실한 증언들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 역시 오영수가 순수문학을 지향했다기보다는 현실, 민족의 문제에 그 관심의 끈을 늦추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참고 문헌
한은희 / 오영수 소설 연구 /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 1997
서광숙 / 오영수 소설 연구 / 영남대학교 / 2002
김지영 / 오영수 소설 연구 / 강릉대학교 교육대학원 / 1998
송준호 / 오영수의 갯마을 연구 / 한국언어문학 / 2002
권영민 / 한국현대문학사 2 / 민음사 / 2002반응형'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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