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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동해의 H라는 어촌은 여느 갯마을과 같으나 유독 과부가 많은 것이 다른 마을과 다르다. 해순은 뜨내기 고기잡이와 해녀사이에서 난 처녀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바위 그늘과 모래밭에서 바닷바람에 그슬리고 조개껍질을 만지작거리고 갯냄새에 절어서 성장한 여인이다. 그녀는 열아홉에 성구에게 시집을 가고,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로 가 버린다. 착실한 성구는 혼자 힘으로 홀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아내를 부양한다. 고등어철이 돌아오자 성구는 여덟 사람이 한패가 되어 칠성이네 배로 원향 출어를 나간다. 갓 시집온 해순은 돌담에서 전송을 한다. 그들이 바다로 떠난 지 사흘 되던 날 폭풍이 몰아친다. 그들의 배는 돌아오지 않는다. 해순은 성구가 돌아올 것을 믿지만 세 식구가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물옷을 입고 바다로 나간다. 그녀는 갯마을의 아낙네들에 섞여 지낸다. 어느 날 밤 해순은 종일 미역 바리를 하고 나무둥치같이 쓰러져 잠이 든다. 압박감에 눈을 뜬 그녀는 상고머리를 한 사내가 자기를 겁탈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다음날 미역바리를 나가서도 해순은 어젯밤의 일을 기억한다. 시어머니는 잘 때 문단속을 잘하라고 한다. 방바위 옆에서 한천을 펴고 있는 해순에게 상수가 나타나 고향에 가서 함께 살자고 한다. 해순은 어젯밤의 사내가 상수임을 알고 칼로 위협하나 실패한다. 아낙네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해진다.
고등어철이 와도 배의 소식이 없자 시어머니는 해순이더러 제사나 지내고 개가하라고 한다. 아낙네들의 귀염둥이인 해순은 상수를 따라 간다. 그러나 상수가 징용으로 끌려가자 해순은 산골에서 견디지 못하고 바다를 그리워한다. 고등어 철이 오자 두 번째로 맞는 성구의 제사를 사흘 앞두고 해순이 삼십 리 산길을 단숨에 달려온다. 산골 생활에 진력이 나서 마구 바닷가로 뛰어가는 그녀를 두고 모두 미쳤다고 무당굿을 하는 틈을 타 마을을 빠져 도망쳐 온 것이다. 그녀는 다시는 갯마을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한다. 해순은 과부 중에서 가장 젊은 스물셋의 청상이다. 초여름밤 멸치잡이를 알리는 꽹과리 소리가 울리자 해순은 후리막으로 나가 줄을 잡는다. 누군가가 해순의 손을 잡고 치마 밑을 더듬는다. 후리질이 끝나고 해순은 짓(수확물)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는 성구와 징용으로 끌려간 상수를 생각하면서 해순은 괴로운 밤을 보낸다. 늦게 잠이 든 그녀의 방에 시어머니가 들어와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문을 걸고 자라고 한다. 해순은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이해와 감상
오영수의 대표 단편소설인 <갯마을>은 동해바다의 한 어촌을 공간적 배경으로 '해순'이라는 여성인물의 삶의 역정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문명 이전의 원시적 순진성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서, 특히 바다의 원형적 상징성과 공간 이동에 따른 작중 인물의 이니시에이션 모티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본원적 순수성을 빼앗아 간 현대 물질 문명이나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인간의 융화를 추구한 작품이다. 문명이 미치지 않는 갯마을을 배경으로 어촌, 바다에 대한 사랑을 지닌 해순이라는 여인을 통하여 갯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서민적 정취를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서정성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정성에는 사회적인 문제나 윤리의 문제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진솔한 모습과 인간으로서 버릴 수 없는 순수한 욕망이 있을 뿐이다. '상수'와 잠자리를 한 후에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그를 따라 산골에 갔던 해순은 결국 고등어 철이 돌아오는 계절의 순화과 함께 다시 바다로 돌아온다. 해순에게 바다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유일한 것으로 그녀는 그 이름이 의미하듯 자연의 일부이자, 순수한 인간의 원형이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체험은 원초적인 본능에 이어지는 성의 문제와 고향의 문제이다. 작가의 관심이 내부적인 욕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본능적인 삶의 기반이 되는 자연과의 융화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바다에 대한 운명적인 애착과 동경을 이야기의 전면에 부각해 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이나 풍랑으로 남편을 잃은 갯마을 여인들의 한이 절박한 현실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삶 자체가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공간적 배경인 '갯마을'의 상징성
갯마을은 작중의 주인공인 해순에게 있어서 삶의 현실적 공간인 동시에 생명 탄생의 근원적 공간이다. 그것은 바다의 이미지를 띤 것으로서 근원적으로는 생명의 지속을 상징한다. 갯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생명의 지속을 위한 수단을 바다에서 구한다. 이들에게 길은 오직 바다를 향해서만 열려 있다. 하지만 바다는 삶의 원형 훼손을 통한 죽음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이는 해순의 남편 성구를 비롯한 여덟 명의 남자들을 더 이상 갯마을로 돌아올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또한 갯마을은 문명이 미치지 못하는 공간으로서 '징용'이라는 표지마저 없었더라면 시대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초시간적인 공간이다. 이처럼 작품의 배경인 갯마을은 번잡하고 소란한 문명 사회와는 동떨어져 있는 공간이며, 이러한 공간적인 특징이 그곳에 사는 인물들로 하여금 자연과 동화되어 꾸밈없이 건강하게 살아가게 한다. 즉, 갯마을은 역사적 현장과는 거리가 있는 인간의 삶의 원형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상징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다'의 죽음과 재생 상징
바다는 갯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명 탄생과 지속의 근원적인 공간이다. 또한 바다는 생명이 넘쳐 흐르게 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상징하는 공간적 배경으로, 작중인물들의 삶의 터전인 동시에 그들의 성격과 품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뜨내기 고기잡이를 아버지로 두었고, 역시 보재기를 어머니로 둔 해순에게 있어서도 바다는 생명의 근원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혼인의례를 치른 뒤 남편 성구가 늘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함으로써 바다는 해순에게 있어서 생명의 근원 공간으로서의 이미지가 더욱 강화된다. 하지만 바다는 얼마 가지 않아서 죽음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무서운 밤이었다. 깜깜하나 칠야, 비를 몰아치는 바람과 바다의 아우성 - 보이는 것은 하늘로 부풀어오른 파도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바다의 참고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흰 이빨로 물을 마구 물어뜯는 거와는 같았다. 파도는 이미 모래톱을 넘어 돌각담을 삼키고 몇몇 집을 휩쓸었다. 마을 사람들은 뒤 언덕빼기 당집으로 모여들었다. 이러는 동안에 날이 샜다. 날이 새자부터 바람이 멎어가고 파도도 낮아 갔다. 샌 날에 보는 마을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중략)...... 그러나 고등어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은 더 큰 어두운 수심에 잠겼다. 이틀 뒤에 후리막 주인이 신문을 한 장 가지고 와서, 출어한 어선들이 행방불명이 됐다는 기사를 읽어 주었다. 마을은 다시 수라장이 됐다. 집집마다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성구를 비롯한 마을 남자 여덟을 죽음으로 몰아감으로써 갯마을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도록 만든 바다는 인간의 원형적 삶의 지속을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우주적 폭력을 상징한다. 해순에게 생명 탄생과 지속의 근원적 상징이었던 바다는 이제 성구를 영원히 빼앗아 감으로써 죽음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해순이 물옷을 입고 일을 시작한 순간부터 바다는 다시금 삶의 터전이자 생명 지속의 의미가 된다. 해순에게 바다는 죽음과 재생의 반복을 상징하는 공간인 것이다.
결국 해순에게 바다는 생활의 터전이라는 부수적인 공간을 넘어서서, 바다가 없이는 한순간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삶을 지탱하는 종교와도 같은 세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해순은 상수를 따라 산골 마을에 가지만 결국 다시 바다로 돌아오게 된다.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원시성이 살아 있는 바다는 해순의 이상향이 되는 것이다.
※ 참고 문헌
한은희 / 오영수 소설 연구 /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 1997
서광숙 / 오영수 소설 연구 / 영남대학교 / 2002
김지영 / 오영수 소설 연구 / 강릉대학교 교육대학원 / 1998
송준호 / 오영수의 갯마을 연구 / 한국언어문학 / 2002
권영민 / 한국현대문학사 2 / 민음사 / 2002송준호 / 오영수의 갯마을 연구 / 한국언어문학 제49집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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