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7. 23.

    by. 건물주님이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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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영수 50년대 문학 특징과 주요 작품

     

    50년대 - 부정적 현실의 비판과 민중에 대한 신뢰

      50년대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오영수 소설에는 그 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으로 인한 비극적 현실이 많이 형상화되어 있다. 특히 전쟁과 그로 인한 부정적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과 고발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오영수의 50년대 소설들은 역사적 현실에 무관심한 순박한 서민들의 애정과 서정이 밀도 있게 표현되어 있는 일부 작품들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50년대 오영수 문학의 본질적 의미가 잘못 파악되기 십상이었다.

      50년대 오영수의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의 의식과 행동을 통해 다분히 나약한 순종의 모습과 패배한 군상들의 씁쓸한 좌절의식이 느껴진다. 그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타개하고 과감히 현실에 부딪혀서 강인하게 살아가려는 생활인이 아니라 거의가 현실에 내밀리고 생존에 패배한 낙오된 군상들이다. 그런데도 이들 낙오된 군상들은 현실을 증오할 줄 모르고 묵묵히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다니는 소극적인 운명론자들이다. 그러나 이처럼 소극적이고 나약한 주인공들의 의식과 행동이 생활인의 자세로서는 나약한 것도 사실이지만 조용하고 나지막한 그들의 목소리와 수동적인 그들의 태도에서 진실된 삶의 의의와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 <박학도> <여우> <후조> 등이 있다. 

      <여우>는 전쟁 직후의 비정한 사회의 일면을 날카롭게 묘파하고 있다. 소심하나 정직한 달오는 모 물산회사의 창고 출납을 맡아보고 있는 하급사원으로 그런대로 근근히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정에 ''네다바이꾼" 친구 성호가 불쑥 나타나면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착하기만 한 달오는 친구가 하려던 사업인 양호원 즉, 여우를 기르는 얘기에 혹해서 돈을 빌려주나 그것은 거짓말이었고, 결국에는 재산과 아내까지 성호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런 면에서 양호원은 바로 피해자 달오의 셋방 자체이고, 의미를 확대하면 불의의 강자에게 유린된 약자의 억울한 세상이다. 여우는 성호이고 나아가 양심이 마비된 인간 일반이며 사회악 자체다. 양호원의 쥐(여우의 먹이)는 물론 달오이고 그는 피해자이며 약자인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50년대 전쟁 직후의 혼란한 사회 현실 속에서 선량한 인간으로서는 생존할 수 없는 부조리한 현실이 당대에 대한 비판적인 세태묘사와 더불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 배신이 다 뭐 말라자빠진거냐고, 굶어 죽은 귀신이 의리냐고,... 도둑놈 배짱 없이 어떻게 이놈의 세상을 살아가겠느냐고... 자 소위 국회의원이란 작자가 시계 밀수입을 했다. 부통령 저격 사건에 순경이 가담을 했다. 정부미 횡령이다. 입학금 이천만 환을 몽땅 들어먹었다. 세금을 받아 뺑소니를 쳤다. 자 어때? 이런 판국이야! 어느 놈을 믿겠느냐 말야,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야...... 도둑질도 누구만 해 먹으란 말이야?

     

      사기꾼 성호에 의해 역설적으로 발언되는 위의 말은 전쟁 이후의 혼란스럽고 부패한 사회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학도>는 전쟁 직후 혼탁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박학도라는 인물을 통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학도는 여관보이, 카페 뒷설겆이꾼, 목욕탕의 화부노릇, 인삼장사, 돌림판, 뺑기칠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만 늘 실패의 연속이고 밑바닥의 삶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박학도라는 인물은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당대 사회의 밑바닥 계층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박학도를 구차스럽고 잡다한 직업을 전전하면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서민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도시의 비정함과 실패만 거듭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가려는 박학도의 생활 모습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야, 임마! 똑똑히 들어 봐라. 세상이 모조리 도둑판이니 네 눈깔에는 누구 없이 다 도둑놈으로 뵐 게다. 그러나 도둑질도 임마, 빽이 있고 돈이 있어야 해 먹는다, 아냐?"
      "나는 빽도 없다, 돈도 없다, 그러니까 도둑질도 못해 먹는다. 그러니까 도둑놈이 아니란 말야. 으 알았지?"

     

      학도가 자기를 보고 계속 짖으며 덤벼드는 철이네 집의 개를 향해 내뱉는 말이다. 세상이 모두 도둑판이란걸 아는 학도지만 자신은 도둑이 될 수 없음을 다소 우스꽝스럽게 강조하는 부분이며, 한편으로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돈과 빽이 결국 도둑질과 동의어임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박학도에게는 그날 그날의 식생활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다. 자신의 삶이 어느 정도 비참한가를 스스로 인식할 수조차 없다. 그저 "엉망진창이다!"라는 푸념만 내뱉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흑인병사와 눈이 맞아 도망간 아내를 찾아 아이를 업고 외인부대 철조망 안을 기웃거릴지언정 삶을 포기하는 일이 없다. 이러한 주인공의 성격은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지는데, 이는 학도처럼 선한 인간이 전후 혼란한 사회현실 속에서 어떻게 희생당하는가 하는 문제를 더 극명하게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근데 그 자는 붙들려 갔던가?"
    "아암!"
    "그런데 어떻게......?"
    "이거야 이거!"
    하고는 학도는 손으로 동그라미를 해 보이면서
    "이것만 있으면 사형날짜 받은 놈도 나온다니......"
    "......"
    "한국 돈 가치 없다켓나, 택도 없다!"
    "그래 지금은 좀 어때?"
    "머 죽기 아니면 살기겠지!"

     

      경찰서 정보원으로 일하다가 자신이 고해바친 사기절도 상습범에게 얻어맞아 반 초주검이 된 학도가 문병을 온 친구 철과 나누는 위의 대화에서도 "도둑질도 빽이 있고 돈이 있어야 해 먹는다"는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환경을 그대로 감지할 수 있다. 정의실현을 명분으로 범법자를 잡아들이는 경찰관이 돈에 매수되어 범법을 하고서도 태연히 정의를 내세우는 부조리한 현실을 아이러니칼 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부조리한 사회환경 속에서 바보처럼 그리고 비극적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박학도의 처지에 대한 작가의 동정과 연민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오영수는 부정적 사회현실에서 희생당하는 순박한 민중의 삶들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ㅇ낳고, 그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훈훈한 인간미를 통해 현실 극복에 대한 전망도 제시하고 있다. 구두닦이 소년인 구칠이와 주인공인 민우 사이에 벌어지는 인정의 세계를 그린 <후조>가 그 좋은 예다.

      주인공 민우는 피난시절에 천막학교의 교사로 있었을 때 많은 구두닦이 아이들 중에서 구칠이에게 천막학교 교사들의 신발을 닦게 해 준 일이 있었다. 이때부터 구칠이는 민우에게 인간다운 정을 느낀다. 환도 후 두 사람은 서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구칠이는 한때 자기에게 온정을 베풀어줬던 민우에게 요금을 받지 않고 구두를 닦아주며 조건 없이 민우에게 잘해주고 싶어 하는 순진성과 의리를 보여줌으로써 통념화된 현대사회의 인물과는 상반된 인물유형을 대변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황폐 속에서 생활에 닳고 닳은 구두닦이 소년들에게 인정이나 의리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 온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구칠이는 '그렇지 만도 않은' 인물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을 <후조>라 한 것도 이와 같은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계절과 더불어 행동하는 후조의 생리처럼 계절이 바뀜에 따라 자기의 처신을 바꾸는 것이 사람들의 생리다. 또한 시대와 더불어 세욕심도 변해가고, 사회의 풍조가 바뀜에 따라 이에 적응하기 위해 인정도 메마르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구칠이와 민우는 인간의 이기주의를 버리고 따스한 인정을 버리지 않고 유지하려는 인물들이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에는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긴 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비극의 현장은 배경으로 밀려나고 미제구두를 구입해 주기로 약속한 민우와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자 남의 구두를 훔치려는 시도까지 하다가 들키는 구칠이의 인정 어린 마음을 미화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구칠이가 구두를 훔치는 불법행위는 그 선한 본성이 빚어낸 아름다운 정으로 나타나 그 행동에 분노를 느낀다거나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인간을 긍정적인 선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인간관이 구칠이의 불법적 행위를 비판하기 보다는 동정하려는 태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한국전쟁으로 인한 사회의 각박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비판하면서도 따뜻한 인정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의 절망을 딛고 일어서자는 작가의 현실인식의 표출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 극복의 의지를 오히려 삶의 각박한 현실에 쫓기는 민중들로부터 얻는다는 점에서 작가는 그들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드러내고 있다.

      즉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이 몰고 온 심각한 사회문제라든가 전쟁으로 인한 부정적 측면을 격양된 목소리로 부르짖기 보다는 그런 불합리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진실된 삶의 의의를 찾고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도록 애쓰면서 인간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 <후조>는 절망과 비관에 가득 차 있던 여타의 50년대 소설들과 분명 그 성격을 달리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영수는 박학도가 양갈보가 된 아내를 찾기 위해 인천으로 갔듯이 구칠이가 일선 지구 양키 부대로 갈 수밖에 없게 된 비극적 현실을 놓치지 않고 있다.

     

      열흘 가까이 해서 구칠이가 펴던 자리에는 딴 아이가 앉았다.
      민우는 신발을 내맡기고
      "전에 여기서 신을 닦던 구칠이란 아이 모르냐?"
      "알아요. 일선 지구 양키 부대로 갔어요!"
      "혼자?"
      "아니요, 여럿이 패를 짜서 가는 데 끼여서요"

     

      작가는 <여우> <박학도> <후조> 등을 통해 전후의 황량한 사회현실에 따른 인간들의 불안의식, 사회제도의 모순이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고발정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오영수는 50년대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소시민이나 하층계급, 즉 현실에 패배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애환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현실을 극복할 전망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부정적 환경에 대한 비판을 통해 역으로 전망을 암시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오영수는 부정적 사회현실에서 희생당하는 순박한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훈훈한 인간미를 통해 현실 극복에 대한 전망도 제시하고 있어, 그의 문학세계는 장용학이나 손창섭 등의 절망적인 모더니즘 계열 소설과는 분명 구별되고 이범선 등의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문학 경향과도 구별이 되고 있다. 

     

     

    ※ 참고 문헌
    한은희 / 오영수 소설 연구 /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 1997
    서광숙 / 오영수 소설 연구 / 영남대학교 / 2002
    김지영 / 오영수 소설 연구 / 강릉대학교 교육대학원 / 1998
    송준호 / 오영수의 갯마을 연구 / 한국언어문학 / 2002
    권영민 / 한국현대문학사 2 / 민음사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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