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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은 1963년 음력 12월 3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서 월남한 아버지 김용수와 어머니 김영혜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국 나이로 다섯 살이 되던 1967년, 부모는 고향 철원을 떠나 서울의 미아리로 이사를 오고, 이 때문에 유년 시절에 대한 김소진의 기억은 철원보다 미아리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철원에서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군수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 가던 아버지는 미아리로 이사를 온 이후로는 가정을 돌보지 못했으며, 1968년에는 중풍으로 쓰러지기에 이른다. 김소진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무능력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이처럼 작가 개인의 유년기 기억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반면, 그의 어머니는 행상과 삯바느질로 4남매의 양육을 책임지는 강한 여인으로 김소진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미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는 구멍 가게를 열어 성실히 운영하면서 달라진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 주는데, 이 가게는 훗날 <쥐잡기>의 배경을 이룬다. 서라벌 고등학교에 진학한 김소진은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후, 1982년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다.
김소진의 대학 생활은 소위 '386세대'의 그것과 흡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 입학후, 고등학교 때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판단의 기준이 무너지면서 그는 일종의 가치관의 아노미 상태를 경험한다. 그리고 1983년 전국을 휩쓴 이산 가족 상봉의 열풍 속에서, TV앞에 앉아 방송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보며 그를 용서하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1985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대학을 휴학한 그는 방위병으로 근무하면서 습작에 더욱 힘을 쏟는다. 1988년 대학을 졸업한 김소진은 여러 군데의 직장을 전전하다가 <한겨레 신문> 교열부에 입사하면서 안정을 찾는다. 이후 1991년 <경향신문> 신춘 문예에 <쥐잡기>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장한 그는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1993년에는 소설가 함정임과 결혼, 한결 안정된 생활 기반을 마련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자신의 유년기 기억과 성장 과정에서의 경험이 주된 배경을 형성하고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사회 생활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서 '거대 담론'으로서의 역사 의식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역사 또는 역사 의식은 그 자체로 소재가 되었다기보다 삶과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선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사회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 있거나 소용돌이에 떠밀려 결국은 사회 주변부에 자리 잡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담한 어조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김소진 소설의 시작을 '아버지'라고 이야기 한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아버지와 개발독재라는 시대적 배경, 여지없이 무너져 가는 아버지의 권위를 바라보면서 느껴야 했던 혼란감은 그의 소설의 모태를 이룬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끌어안게 되는 그 시점에서 작가는 누추한 민초들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튼튼한 문학적 토대를 구축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김소진은 1980년대 한국 문학이 보여 주었떤 높은 톤의 목소리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음색을 지닌 작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1990년대 '젊은 작가'들이 보여 주었던 독서 체험에 근거한 창작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왜냐하면 김소진은 철저히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근거하여 작품을 창작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김소진의 소설은 독자에게 편안함을 줌과 동시에 읽는이의 기억을 작가의 기억과 겹치도록 하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1990년대에 등단한 작가들 중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였던 김소진은 1997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4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 참고문헌
김형수 / <정신과 육체의 변증법>
고인환 / <1980년대 문학을 '타자화'하는 한 방식>
김택중 / <심층심리의 소설적 변용>
전승주 / <다시 돌아와 맞서야 할 현실의 길>
백지연 / <현재를 응시하는 '수인'의 글쓰기>
김경수 / <현재적 삶을 바라본 두 개의 시각>반응형'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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