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7. 3.

    by. 건물주님이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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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국선 <금수회의록>

     

    줄거리

      부드러운 바람결에 잠깐 잠이 들어, 짚신을 신고 대지팡이를 흔들며 유유히 봄길을 나서는데, 발길이 가 닿은 곳은 '금수 회의장'이라는 곳의 현판 앞이다. 길짐승, 날짐승, 벌레, 물고기, 풀, 나무, 돌 등의 행렬에 의해 엉겁결에 밀려들어가 그 회의를 모두 보게 된다. 금수들이 하나씩 등장하여 제각기 인간을 비판하고 조소하는 연설을 하는데,

    1. 까마귀 '반포지효'를 내세워 인간의 불효를 논박하고,
    2. 여우는 '호가호위'를 내세워 외세에 의존하려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논박하고,
    3. 개구리는 '정와어해'를 내세워 바깥세상의 빠른 정세에 어두운 무지한 인간을 논박하고,
    4. 벌은 '구밀복검'을 내세워 말과 마음이 서로 다른 인간의 부정직하고 이중적인 행실을 논박한다.
    5. 게는 '무장공자'를 내세워 남의 압제를 받아도 자유를 찾아 항거할 줄 모르는, 창자가 다 썩어버려 주체성과 자존의식을 상실한 인간을 논박하고,
    6. 파리는 '영영지극'을 내세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혈안이 되어 동포애를 상실한 인간, 즉 골육상쟁을 일삼는 인간을 논박하고,
    7. 호랑이는 '가정맹어호'를 들어 포악한 정치를 논박하고,
    8. 원앙새는 '쌍거쌍래'를 내세워 원앙새처럼 지조를 지키며 화락하지 못하고 각자가 부정하고 음란한 욕정을 가지고 있음을 논박한다.

      회의가 끝나 모두 나간 뒤에, '나'는 모든 금수에게 이렇게 비판과 비난을 받는 처참한 사람을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는가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하늘은 아직도 사람을 사랑한다 하니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핵심정리

    • 갈래 : 신소설, 단편소설, 우화소설, 정치소설
    • 성격 : 우화적, 푸자적
    • 문체 : 연설문체
    • 구성 : 액자구성(8마리의 동물이 차례로 인간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회의 광경을 '나'가 관찰하고 기록하는 형식을 취함)
    • 제재 : 동물 회의
    • 주제 : 인간 세계의 모순과 비리와 타락상 풍자, 개화기의 혼란한 세태를 비판한 우화
    • 의의 : 당시의 사회와 정치 및 인간의 부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개화기 우화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연설, 회의 형식과 우화 형식을 빌려, 타락한 인간을 고발하고 당시의 정치 현실을 비판한 소설이다. 비록 동물들 간에 토론이 전개된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연설로 끝나 버리나 침략을 규탄하고 매국의 행동을 비판하는 데 힘을 기울인 것은 중요한 시대적 의의를 갖는다. 아주 진보적인 생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동물보다 못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 데에서 개화기의 계몽주의적 태도가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관찰자 '나'는 꿈속에서 인간의 비리와 인간의 간사한 현실 사회를 성토하는 동물들의 회의장에 들어가 동물들의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형식적으로는 액자 소설의 형태와 '입몽 - 각몽'구조를 가진 몽유록계 고대 소설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신소설들이 지니고 있는 소재와 주제의 한계를 벗어나 권선징악적 주제나 이야기 서술에 치우치지 않고 현실 비판의 주제 의식과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하여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신소설 작품과는 다르다.

     

     

    우화, 정치 소설과 <금수회의록>

      우화 소설은 주로 동물에 가탁하여 인간 행위의 우매함과 타락함을 풍자, 비판하고 이를 계도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특이한 기법의 서사 문학이다. 이런 양식의 소설은 부조리한 현실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의도로 저항 정신의 발로이자 건강한 도덕심을 제창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정치 소설은 정치사상이 지배적 역할을 맡고 있거나 정치적 환경이 지배적인 배경으로 되어 있는 소설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국민의 정치적 계몽과 개인적 정견 발표 내지 사회 개량 수단으로 나타나거나, 국권 신장 의식을 반영하고 부패 관료의 학정을 폭로하는 풍자적 무기로 이용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소설을 포함시킬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우회적 정치 소설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 때문에 까마귀, 여우 등의 동물을 내세워 우화 형식을 빌렸지만, 자신의 정치, 사회의식을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어조로 표현하여 국민의식의 계몽을 촉구했던 것이다.

     

    ※ 우화 소설의 특징

      우화의 전통 자체는 오래되었지만 우화 소설은 소설이 본격적으로 발흥하던 조선 후기에 등장했다. 봉건 사회에 모순을 드러내고 그것을 지탱하고 있던 가치관, 이념의 획일적 권위가 부정되던 시대였기에, 현실을 재현하면서 풍자를 통해 그릇된 인간의식과 행태를 비판해 온 우화는 소설 갈래로 쉽게 이행해 갈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우화 소설로는 <토끼전>, <장끼전>, <서동지전>, <까치전>, <녹처사연회> 등이 있다.

     

     

    <금수회의록>과 연설

      <금수회의록>은 연설이라는 새로운 담론의 형식을 서사의 방법으로 채용하고 있다. 연설은 개화 계몽시대에 민중의 정치의식의 성장과 함께 새로이 등장한 일종의 새로운 사회적 제도이다. 독립협회나 만민공동회와 같은 사회단체의 계몽적인 정치 활동은 모두 연설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연설은 개인적인 정치적 경륜을 논리적으로 공개적으로 피력하는 새로운 담론의 방법이다. 이 새로운 담론의 방법은 담론화 과정과 자체가 합리성과 규범성을 바탕으로 하며 쟁론적인 성격도 강하게 드러낸다. 그러므로 연설을 통해 쟁점이 제기되고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금수회의록>은 흔히 볼 수 있는 우화라는 서사 양식에 연설이라는 새로운 담론의 방법을 채용함으로써 계몽적 담론으로서의 정치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물론 계몽적인 정치활동으로서의 연설 장면은 신소설의 경우에 자주 등장하며, 이광수의 <무정>에서도 여러 장면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내용도 신교육의 확대, 사회 제도의 개선, 자주독립 등과 같이 비슷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방법은 <금수회의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개화계몽시대의 정치 활동으로서의 연설이라는 새로운 담론의 형식을 서사 양식에서 패러디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인다면, <금수회의록>은 1908년 5월에 발매 반포가 금지되었고, 이미 발행된 책도 압수 처분을 받았다. 이것은 일제에 의해 정치적 계몽 활동이 금지되고 출판물에 대한 검열이 제도화된 것과 때를 같이 한다.

     

     

    <금수회의록>의 기독교적인 인간관과 전통적인 윤리관

      <금수회의록>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회 비판 의식은 주로 기독교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통적인 윤리관과도 상통하고 있다. 안국선은 봉건적인 조선 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윤리 도덕마저 무너져 버린 것을 개탄한 나머지 기독교적 인간관에 바탕을 두고 현실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 내용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도덕관과 윤리 의식의 회복을 강조한 것들이다. 반포지효에서의 부모에 대한 효도, 무장공자에서의 지조와 절개, 영영지극에서의 형제 동포 간의 우애, 쌍거쌍래에서의 부부의 화목 등은 모두 혁신적인 이념이라기보다는 과거에서부터 존속되어 왔던 전통적인 가치관이다. 안국선은 인간 생활의 도표로서 유용한 이러한 가치관을 다시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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