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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삼대>는 민족주의 문학이다.
<만세전>에 제시된 식민지 시대 현실의 묘사와 작자의 현실 인식이 <삼대>에서는 한 가정 속에서의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양상을 통하여 보다 정연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리얼리즘 작가의 면모를 보이게 되는 염상섭은 식민지 자본주의 현실에서 돈과 관련된 욕망을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생활현실의 배후에 돈으로 상징되는 조선의 식민지 자본주의의 현실을 그 본질로부터 파악하고자 하는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다. 이 시기에 위와 같은 문학세계가 형성되는 데는 시대적인 영향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년대 중반 경에 프로문학의 세가 강력해지자 그에 대응하겨 '민족문학' 운동이 일어났는데, 양자의 대립은 20년대 말에는 극단적 상태에 이르렀다. 사실, 1926년만 해도 민족문학파는 형성되어 있지도 못한 상태였으나 그 이후 이광수, 염상섭, 최남선 등 기존문단의 주도적 인물들이 세력이 형성하여 프로문학에 대항하게 된 것이다. 프로문학파는 무력 투쟁론을 내세우는 급진적인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 세력과 연결되고, 민족문학파는 3.1운동시의 온건 세력 등의 민족주의자들과 이어진다. 두 학파의 차이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프로문학론자들이 변혁을 통해 일정한 새 지반을 찾고자 한다면, 민족문학론자들은 현실에서의 안정된 삶을 확보하면서 이로부터 점진적으로 현실적 조건들을 고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삼대>는 이러한 문단적 상황 속에서 발표된 것으로서, 민족 현실의 일면을 파헤쳐 보이는 한편 작가 나름의 민족현실의 극복방법과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암시하려 한 작품이다. 20년대에 염상섭은 평론과 소설작품을 통하여 민족문학운동의 대열에 서 있음을 보여왔따. "투쟁을 위하고 집단을 위하여 개인성의 자유를 박탈치 말고, 개인성의 자유천지를 봉쇄치 말라"는 데서 민족문화론자로서의 개성 및 자유 우위론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삼대>는 이러한 염상섭의 민족주의문학 운동의 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현대소설사에서 누구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갖는 작가로 위치하기까지, 그의 장편소설 <삼대>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삼대는 1931년 1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로서 "당대의 사회를 극명하게 통찰하고 그 시대의 갈등의 핵심을 포착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염상섭 문학 연구에 있어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고, 그를 근대 문학사상 가장 탁월한 작가 중 하나로 인식시킨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삼대>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하나는 조의관을 중심으로 한 부르주아 집안이고 다른 하나는 김병화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세력이다. 소설은 이 두 세력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진행되는데 그 각각의 생생한 실상 속에서 그것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면서 그것으로부터 떠나려고 하는 새로운 움직임을 조덕기와 이필순을 통해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즉, <삼대> 속에서 식민지 지배체제 하에서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가치관과 생활양상을 일단 정리하여 보고, 그것들을 통합하는 새로운 질서의 정립을 모색하려는 염상섭의 의지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조씨 가문의 제1세대인 조의관은 가족, 개인적 생존만을 문제 삼을 뿐, 민족,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전혀 갖지 않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 있어서 전적인 관심사는 자신이 확보해 왔던 부를 어떻게 지켜나가는가, 인습적인 권위를 어떻게 확보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할 것인가, 사후에 자신의 사당을 어떻게 보존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재산과 사당 확보 문제와 관련된 사건은 조의관이 그 두 가지를 믿고 맡기기에는 불안한 존재인 아들을 제쳐놓고 손자에게 바로 재산상속권을 넘기는 장면이 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적 관습이라 할 수 있는 장자 상속의 가족적 질서마저 부정한 것이며, 이와 같은 문제들은 결국 조의관 개인을 위한 것일 뿐이다. 이러한 조의관의 생각이 염상섭이 비판하고자 하는 구시대적 가치관의 한 표본이다. 채만식의 <태평천하>에 나오는 윤직원도 조의관과 동일한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삼대>의 많은 분량이 조 씨 가문의 제2세대인 조상훈의 행적에 관한 것인데, 이 작품 속에서 작가가 가장 통속적인 인물로 그려 보이려고 하는 것이 바로 조상훈이라는 것이다. 조상훈은 2년 동안이나 미국에 다녀온 적이 있는, 고등 신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는데, 젊은 지사로 자처하며 일정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맡으려 했지만 식민지 시대가 되면서 품어왔던 이상을 실현시켜 나갈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뛰어들 수 있었던 곳은 기독교 사회였다. 거기서 그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사회사업 활동에 참여하게 되지만 민족현실에 대한 일정한 인식체계는 갖지 못했고, 한편으로 개인적 욕망달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에 철저한 사회봉사자도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기독교를 앞세우면서 개인적 안일을 추구하는 이중생활의 위선자가 되었다. 결국 그는 사회를 위한 사회활동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사회활동을 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게 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소외로 해서 그는 점차 비열한 인간이 되어 간다. 그는 부친식의 봉건적 가치관을 단호히 거부했지만 식민지 시대에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봉건시대에서 지금 시대로 건너오는 외나무다리의 중턱에 선' 인물의 전형으로 부각된다. 조의관은 아들 조상훈 이하의 다음 세대에 의해 부정되면서 실질적인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조상훈 역시 자신의 방황 때문에 몰락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몰락의 현장을 목격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하는 인물이 바로 조상훈의 아들 조덕기이다. 조덕기가 모색한 것은 재생의 방법론이었다. 염상섭이 긍정적인 시선으로 부각하려 한 것이 바로 조덕기이다. 조덕기가 지향한 것은 가족의 재생뿐 아니라 민족의 재생이었다. 조덕기는 조부의 전통적 가치관에도 문제가 있지만 부친이 보인 전통적 가치관의 전면적 거부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전통적 가치관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기독교와 같은 외래적 사조에 편승함으로써 한국인의 사회 속에서 실패의 삶을 보여주는 부친에게 더 큰 반발을 보인다. 덕기는 기독교를 거부했다. 덕기에게는 전통적 가치관의 일부는 존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덕기는 윤리적 차원에서 부친을 동정하며 '가엾은 생각'을 가져볼 따름이다. 결국 덕기는 윤리적 차원에서 부친이나 조부를 타협시키고 또 그 스스로 그들과 타협함으로써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시켜 보려고 한다. 믈론 그 성과는 거의 없다. 조의관에 대한 조상훈의 거부, 다시 조덕기에 의한 양자의 합의 시도가 조 씨 가문 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의 요약이 된다.
반응형앞에서 언급했듯이 조의관으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집안의 축과 더불어 중요한 흐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 세력이다. 초기 사회주의자로 나오는 필순의 아버지의 경우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하여 집안 일을 돌보지 않아 딸이 겨우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여 벌어먹고 사는 형편에 놓여 있다. 어설픈 자존심과 과거 때문에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그에게 염상섭은 대단히 비판적이다.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무산대중을 구할 수 있겠으며 그런 운동을 할 것 같으면 결혼도 하지 말고 하여야만 책임을 지는 거인데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아 놓고서 책임은 지지 못하고 오히려 공장에 다니는 딸이 벌어오는 것으로 살아가는 기생적인 생활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염상섭의 비판은 병화에 이르러 가장 고조되는데, 특히 병화가 필순더러 모스크바에 유학하라고 권하는 대목은 당시의 사회주의자들이 얼마나 민족문제에 둔감하고 관념적 국제주의에 매몰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주의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독자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필순이다. 아버지가 사회주의자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공장의 노동자로 집안을 꾸려 나간다. 그러기에 사회주의 같은 이념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자기를 비롯한 주변의 세계에 대단히 충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사회주의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잃어버린 채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달리 필순을 자기의 행동거지를 철저하게 반성하는 가운데서 일을 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 의탁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살아가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덕기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몰락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조의관과 조상훈은 물론이요, 김병화나 장훈 등의 사회주의자들도 내분과 이념의 변질 그리고 일제의 탄압 때문에 몰락하고, 경애의 부친이나 필순의 부모 같은 과거의 민족투사들도 일제의 탄압 때문에 몰락하고 만다. 이런 사건들을 통하여 염상섭은 덕기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소유한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가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적절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삼대>는 당시의 부르주아 세력과 사회주의 운동가들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즉, 식민지화된 조건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안녕만 염두에 두고 그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 부르주아들의 행세뿐만 아니라 혁명에 대한 열정으로 들떠 있지만 민족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단지 관념상으로만 진보를 내세우고 자기 앞가림도 할 줄 모르는 사회주의자에 대해 마찬가지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염상섭은, 이러한 인물들의 내면 세계를 파헤쳐 가면서, 이들이 활동하는 무대인 식민지적 현실에 주목한다. 주지하다시피, 3.1 운동은 이 땅에 삶의 터전을 일구어 살던 우리 동족으로 하여금 식민지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부딪혀야 하는 삶의 여건들에 대해 한편으로 대응하면서, 새로운 민족절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부단한 시련의 시기를 다시 새롭게 맞아야 했던 것이다.
<삼대>의 작가 역시 이 점에 남다른 관심과 각성을 보였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모든 질서와 가치관의 혼류 속에서 현실적으로 제기되는 여러 식민지적 상황들을 조감할 수 있다. 전통적인 가치관에 의해 살아가는 구세대들과, 부의 축적으로 인한 신분 상승에의 의지들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지는 한편, 신식 문물에의 경도와 의식 없는 생활의 비참한 패배, 그리고 새 세대의 주인공으로서, 자각을 앞세우면서도 현실적인 장벽 앞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행동이, 계층간의 갈등과 더불어 적절히 형상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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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김윤식, 정호웅 / 한국소설사 / 문학동네
김우창 / 궁핍한 시대의 시인 / 민음사 / 1982
권영민 / 염상섭전집12 / 민음사 / 1987
문학과 사상 연구회 / 염상섭 문학의 재인식 / 깊은 샘 / 1998
유종호 외 / 염상섭 / 서강대학교 출판부반응형'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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