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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만세전>은 한국 근대소설의 진정한 출발, 근대성의 기념비적 의의를 가진다.
염상섭의 <만세전>에 관하여
<만세전>(원제:묘지)은 염상섭의 대표작으로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문학사의 대표 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만세전>은 왜 한국 근대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인가를 형식과 내용의 국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한다.
형식적 근대 소설로서의 성격은 고백체(문체적 양상)라는 개념과 여로형식(서사구조 양식)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분할되어 지적될 수 있다.
소설 양식의 원형적인 형태는 전기의 형식으로 주어졌으며, 그것의 원형적 진술방식은 말 그대로 '이야기', 즉 구어 언어의 진술 형식으로 주어졌었다. 그런데 근대 소설로 옮아오면서 이러한 서사개념은 근본적인 수정을 입는다. 이 수정의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한 이념 또는 개념이 리얼리즘의 관념이었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즉 개연성 있는 이야기만이 참다운 소설로서 인정받기에 이르며, 이에 따라서 나타난 서사양식의 변화 양상 즉 참다운 소설의 존재 방식은 가능한 경험을 진실하게 구체적으로 표현해 내는 형식으로 되었다. 경험을 가식 없이, 구체적으로 표현해 내야 한다는 것 리얼리즘 개념으로 압축되는 이 요구가 결국 오늘날의 근대 소설 형태를 결정지었다. 1인칭 고백체 양식이야말로 화자 자신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진술해 내는 방식이기에 진실자체의 진술형식으로 인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여로형식이 근대적인 요인을 살펴보자. 여로 형식으로서 서사 구조가 구축하는 안정감 측면 또한 근대적 요인이다. <만세전>은 여로형식으로 지칭되는 근대적 서사 양식의 전형 한가지를 유례없이 탁월하게 응용함으로써 우리 소설사상 전례 없는 미학적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세전>의 내용 면에서 근대적인 요소를 찾아보면 식민지 현실 비판과 주체적 자립사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만세전>이 작중 주동인물, 즉 이인화의 뒤에는 끊임없이 감시자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형사취재의 현실이 부각되어 나타나며 민중적 삶 전체가 직면해 있는 제국주의적 경제 침탈의 현실 멸시 구조주의적 시각 아래 환기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식민지 현실에 대한 폭로의 의도성을 가진 작품임은 분명하다. 이 작품의 문학사적 위대성 역시 상당 부분 이에서 연유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말하여 이 소설만큼 당대 현실의 식민지적 모순 관계의 축도를 구체적이고도 전체적으로 드러내 놓고 있는 작품은 달리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만세전>의 내용면에서의 근대성을 식민지성의 폭로, 비판이라는 각도에서만 해석하고 마는 것은 일면적인 것이며, 그런 점에서 편협하고 불충분한 해석으로 그치기 쉬운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주체적 자립사상이라는 이념적 근대성에 대해서도 해석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만세전>이 한국근대소설의 진정한 출발을 알리는 작품으로서 평가되는 이유를 고백체 문체의 근대성, 여로 형식의 서사적 근대성, 식민지 현실 비판의 근대성, 주체적 자립사상의 근대성의 네 가지 요인으로 살펴보았다. 이것은 철학사적 문맥에서 한국근대문학이 <무정>의 계몽적 이성 단계를 벗어나 반성적 이성의 단계에 진입한 것을 뜻하고 있다고 보아 <만세전>이 한국근대소설의 진정한 출발을 알리는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네 가지 요인의 근대적 성격이 각기 분산, 독립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총체로서의 근대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줄거리
- 일본에 유학 중인 '나'(이인화)는 서울에 있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연말 시험도 포기한 채 귀국한다.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을 고쳐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과 원만하지 못했던 부부 관계 등으로 '나'의 마음은 음울하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정자가 있는 술집에 들러 술도 마시고, 카페에도 가 보고, 음악 학교 학생인 을라도 만나 본다.
- 귀국하는 배에 올라서도 짖궂게 미행하는 일본 형사에게 계속 시달리면서 울분을 삭인다. 배 안의 욕실에서 우리나라 노무자들을 경멸하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라 없는 설움과 압박과 곤궁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나라 노무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 휩싸인다.
- 그러나 부산에 도착해서 김천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 여정에서 '나'는 우리 민족이 암담한 현실에 빠지게 된 것이 단순히 일제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봉건적인 무지함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식민지 지배에 굴종하면서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우리 민족 개개인에게도 심각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서울의 집에 와 보니, 현대 의학으로는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유종을 앓고 있는 아내를 방치한 채, 아버지는 술타령이나 하면서 재래식 의술에 맡겨 결국 아내를 죽게 만든다.
- 집안에는 출가했다가 과부가 되어 돌아온 누이, 종손인 종형, 그 밖의 과객들이 득실거려 도무지 안정을 얻을 수 없다. 다시 유학 길에 오르려 하지만, 집안 식구들의 만류로 발이 묶였고, 재혼을 하라는 형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 상중에 일본에 있는 정자의 간절한 편지를 받는다. 새 길을 찾아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에게 새 출발을 축하한다는 편지와 함께 돈 백 원을 보낸다.
- '나'는 자신부터 자각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면서 구더기가 들끓는 공동 묘지 같은, 답답한 조선을 떠나 진실된 삶을 찾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나'는 불쌍한 아내, 사랑보다 연민이 앞섰던 가련한 아내를 생각하면서 탈출하듯 다시 동경으로 떠난다.
반응형등장인물
- 나(이인화) : 당대의 현실을 무덤으로 인식하는 인물. 도쿄 유학생으로 아내의 위독 전보를 받고 귀국함.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이해와 애착이 없는 당대의 지식인의 전형. 허무주의적 성격도 보임.
- 김천 형님 : 국민학교 교사. 보수적인 성격
- 아버지 : 구시대의 보수적 성격
- 형 : 구시대의 보수적 성격
- 아내 : 보수적이며 순종적인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상을 지닌 인물. 나의 무관심 속에서 죽어가는 시대의 희생양
- 정자 : 아내와 대비되는 인물로, 이지적이고 진취적인 카페의 여급
- 김의관 : 사기꾼. 일본인 앞잡이로 변신하여 구차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물
작품감상
- 이 소설은 동경 유학생 이인화가 동경에서 부산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가 다시 동경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즉 동경에서 고베, 시모노세키, 부산, 김천 등을 거쳐 서울에서 다시 동경으로 돌아가는 원점회귀의 여행이 이 작품의 골격이다. 그 과정에서 이인화가 3.1 운동 이전의 일제 치하의 조선 현실에 대해서 느끼는 분노와 울분, 그리고 답답함 등이 현실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잘 나타나고 있다.
- 이 작품의 원제가 <묘지>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당시 조선의 현실은 공동묘지처럼 답답하고 암울하면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 조선 현실에 대한 주인공 이인화의 태도가 저항적이거나 투쟁적이지 않는다. 그저 울분과 분노를 느낄 뿐, 그 상황에 대한 보다 깊은 인식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관찰하는 데에만 머물러 있다. 이러한 그의 의식구조는 조선과 동경의 대립 구도 속에 놓여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즉 그의 의식 구조 속에는 조선의 현실을 도피하고 있으며 동경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의 현실은 묘지로 표현되고 있고 동경으로 곧 돌아가려 한다.
- 결국 동경은 발전된 근대적인 문물, 즉 서구적인 근대성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인화는 일제 치하의 궁핍한 조선의 현실을 부정하고 서구적인 의미의 근대성을 향하고 있는것이다. 이는 조선 현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그를 극복하기보다는 회피하고 부정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써 당시 지식인들의 의식 구조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 이 작품은 지식인 청년인 '나'를 주인공으로 한 지식인 소설이지만 지식인 소설의 한계를 넘어 3.1운동 이전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꿰뚫어 본 작품이다.
- 여로형 소설인 이 작품의 공간들은 당대의 현실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타락한 공간이며 자아와 항상 대결하는 화해가 불가능한 공간이다. 귀국 도상에서 목격하고 관찰하는 식민현실과 몰락해 가는 중산계급, 그리고 그 속에서 비참하고 절망적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계 및 의의
식민지 현실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관점이 시종 비관적, 자조적이며, 궁극적인 현실대응의 태도가 모호하다는 점, 그리고 소설 미학적 면에서 구성의 빈약으로 인한 예술적 감동력의 부족이라는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만세전>은 식민지 사회양상의 광역적 제시를 통해 당대적 현실 인식을 진지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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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김윤식, 정호웅 / 한국소설사 / 문학동네
김우창 / 궁핍한 시대의 시인 / 민음사 / 1982
권영민 / 염상섭전집12 / 민음사 / 1987
문학과 사상 연구회 / 염상섭 문학의 재인식 / 깊은 샘 / 1998
유종호 외 / 염상섭 / 서강대학교 출판부반응형'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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